최재석

/중앙라운지

리우 올림픽 막바지에 한국 선수들의 잇따른 '아쉬운 패배' 소식에 실망하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패배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내뱉는 죄송하다는 말이 우리를 더 안타깝게 한다.

  '노메달 한국 유도, 양궁에서 배워라', '사상 첫 조별리그서 탈락 여자 핸드볼' '단 1승도 건지지 못한 여자 하키', '한국 레슬링, 8년 만에 다시 노골드 위기' 등등.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종목의 경기 결과를 전하는 기사나 칼럼의 제목도 까칠해진 듯하다.

이런 식의 보도는 그만큼 국민의 실망이 컸다는 점을 반영한 것일 게다.

그렇더라도 선수 당사자나 코치진, 가족 등이 느끼는 좌절과 실망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대표의 이름으로 조국의 명예를 걸고 세계인과 경쟁하는 올림픽은 운동선수에겐 꿈의 무대다.

그 꿈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이 어찌 값지지 않겠는가. 과정은 잊은 채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데 우린 너무 익숙해 있지 않았던가.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는 전체 28개 종목 가운데 농구와 테니스, 럭비, 철인 3종을 제외한 24개 종목에 204명이나 된다.

이 중 대회를 5일 남긴 시점에 금·은·동메달을 딴 종목은 사격, 양궁, 펜싱, 유도, 레슬링, 역도 등 6개에 불과하다.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메달권에서도 먼 종목에도 적잖은 한국의 젊은이가 조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름도 생소한 근대5종(사격, 펜싱, 수영, 승마, 크로스컨트리로 구성) 종목에는 김선우·전웅태·정진화 선수가 출전했다.

요트에 김지훈·김창주·이태훈·하지민, 조정에 김동용·김예지, 카누에 조광희·최민규 선수도 피땀으로 노력한 끝에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리우에 갔다.

이제는 소위 '효자종목'이나 '인기종목'이 아닌 종목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당당히 겨루는 모습도 보고 싶다.

이들이 지난 4년간 흘린 땀도 다른 선수보다 적지 않았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시상대에는 서지 못하겠지만 그들이라고 왜 감동적인 사연이나 '환희의 드라마'가 없겠는가. 올림픽 중계가 메달 유망 종목에만 몰리다 보니 우리가 보지 못했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일 것이다.

종목마다 관련 협회 차원의 지원도 많은 차이가 난다.

선수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혼자 힘만으로는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다.

양궁이 리우 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는 오랫동안 협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몫을 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16일 양궁 대표팀이 귀국한 인천공항에는 수많은 취재진과 환영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승자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패자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냉정한 승부의 스포츠 세계에서 결과가 중요하다지만, 그 과정에 배인 땀과 노력도 높이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리우 올림픽 한국 선수 경기 중 여자 핸드볼 경기를 보는 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이번 올림픽 최고령 한국 선수인 오영란(44)과 또 다른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멤버 우선희(38) 등 아줌마 선수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이 힘이나 체격에서 월등한 유럽 선수들과 부닥치며 코트에 쓰러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그동안 여자 핸드볼에 대한 기대를 너무 키웠던 탓도 있다.

9회 연속 올림픽에 진출한 여자 핸드볼은 앞서 8차례 올림픽에서 모두 4강 이상의 성적을 내며 금 2, 은 3, 동메달 1개의 성적을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성적에 대한 심적 부담이 그들에게 주눅이 들게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기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별리그에서 탈락이 확정된 후 고개를 푹 숙인 선수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핸드볼은 하키와 함께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4년마다 올림픽에서 환희와 감동을 줬던 종목이다.

이번에도 결과가 좋았으면 더 좋겠지만 열심히 한 후의 '아름다운 패배'에 더 힘찬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면 경기에 지고도 웃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판정 시비에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부상 투혼을 발휘해 동메달을 차지한 레슬링 김현우 선수는 금메달을 땄던 2012년 런던올림픽 전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자,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고, 이 말은 태릉선수촌 레슬링훈련장의 슬로건이 됐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시상대 위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왔다.

오히려 시상대에 오르기 위해 흘린 땀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곤 했다.

태극 전사들이여, 그대들은 올림픽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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