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은 <싸이퍼> 요즘 힙합 장르는 대세다.

음악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로 인기를 얻더니 그 인기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힙합이 문학으로 녹여지면 어떤 형태를 보일까. 탁경은의 <싸이퍼>(사계절)는 힙합 장르를 소재로 청소년들의 꿈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풀어간 소설이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프리스타일로 랩을 하는 ‘싸이퍼’가 소설 <싸이퍼>로 오면서 우리 주변 곳곳으로 확장되고 이해와 소통의 의미로 이어진다.

힙합에 타고난 재능이 있으면서 즐길 줄 아는 ‘중딩’ 도건이와 재능은 없지만, 누구보다 힙합을 사랑하는 족발 배달 알바생 정혁이의 이야기가 마치 싸이퍼를 하듯이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학교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야한 동영상을 보거나 졸고 있지만, 키 작은 도건이는 시집을 필사한다.

힙합 가사를 더 잘 쓰기 위함이다.

도건이는 아이들보다 수준이 높음을, 격이 다름을 스스로 알기에 세상을 향해 나 잘났다고 외치는 스웩을 제대로 즐긴다.

모든 일에 항상 허세 가득한 자세로 일관하지만 요즘은 조금 거슬리는 게 있다.

부엌에 있는 걸 좋아했던 엄마가 갑자기 부엌일에 손을 놓은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나 잘났다, 하는 도건이에게도 우상은 있다.

홍대 거리에서 소울 가득한 랩을 구사했던 정혁이가 그렇다.

도건이는 홍대에서 사람들에게 빙 둘러싸인 채 랩을 하는 정혁이와 랩 배틀을 하고 현란한 랩으로 정혁이를 이긴다.

도건이는 자신이 이겼지만 정혁이의 랩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힙합의 정신은 진실함에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간의 나약함은 힙합의 고귀한 정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소설은 족발집 아저씨와 도건이의 이야기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힙합 정신을 풀어간다.

족발집에서 족발을 다듬는 아저씨는 사장의 지시로 족발에 비식용 목초액을 썼던 비양심적인 이야기를 정혁이에게 들려준다.

힘이 없다는 건 그런 거라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참고 해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도건이는 힙합을 사랑하기에 삶에서 힙합의 정신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감 있게 진심으로 스웩 할 수 있었다.

그러다 힙합 정신이 무너지는 사건이 생긴다.

친한 친구 상민이가 같은 반 손윤한 패거리에게 맞는 걸 보고도 모른 체한 채 도망친 거다.

도건이는 랩 배틀에서 이기도록 돕겠다고 정혁이와 약속했지만, 더는 노하우를 전달할 수가 없다.

이미 스스로 힙합 정신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비겁한 자신이 힙합을 할 수 있을지 묻는 도건이에게 정혁이는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한 래퍼 산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용기의 진실함을 이야기한다.

책은 최근 청소년들이 흥미로워하는 힙합이라는 소재 하나로 ‘소통’이라는 깊은 주제 의식까지 도달하고, 형식까지도 랩의 리듬을 살려 신선함을 안겨 준다.

아무런 연관이 없던 두 사람이 교차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힙합 배틀 한 번으로 만나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싸이퍼’라는 큰 줄기로 풀어낸다.

도건이는 랩으로, 정혁이는 평어로 서술하는데, 소설 마지막까지 랩의 리듬감이 지속된다.

/윤가빈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