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터널로 불렸던 곳 전라선 복선화로 폐쇄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작품 전시 가능 전국단위 관람객 찾아 문화예술 마중물 소망

▲ 마중물 갤러리 입구.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터널이 갤러리로 변신해 화제다.

전라선이 복선화되면서 새로운 기찻길이 놓이게 됐고, 기존 철도는 철거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신포역은 주민들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이 됐고, 아중역은 음식점으로 사용 중이다.

아중역 인근 기찻길은 레일바이크 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하지만 폐 터널이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전북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신리터널로 불렸던 이 터널은 미술, 공예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로 다시 태어났다.

마중물갤러리다.

마중물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이계욱 대표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갤러리는 겉모습부터 남다르다.

철도 터널을 개조해 만들다보니 마치 환상 속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갤러리를 한바퀴 돌다보면 이계욱 대표의 정성어린 손길이 와 닿는다.

엔간한 정성이 아니면 흉한 터널이 이렇게 변신하기는 힘들 거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 2015년 11월 20일 정식 문을 열었다.

그해 2월 전라선 터널을 지자체나 개인에게 임대한다는 내용을 접하자마자 이곳을 찾았다.

당초 원하던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전남 여수나 순천, 광양 등 바다가 보이는 곳을 원했다.

하지만 이미 그곳들은 발 빠른 지자체나 개인이 임대를 해 버린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신리터널을 찾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바다는 아니어도 바로 옆 전주천이 흐르고 터널을 감싸고 있는 바위들도 마음에 들었다.

전주 시내권과 가까운 점도 한 몫 했다.

신리터널은 지난 1913년 처음 만들어졌다.

하지만 1999년 전라선 복선이 완공되면서 폐선된 곳으로 8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신리터널의 길이는 225m에 달한다.

이곳을 어떻게 변화시킬 까 고민하던 찰나 갤러리를 떠올렸다.

전시공간이나 작업공간을 가지는 못한 작가들의 애로사항을 이곳에서 해결하자는 차원에서다.

때문에 갤러리는 정식작가나 프로작가가 아니더라도 이용이 가능하다.

비록 초등학생이 작품을 들고 오더라도 그 가능성을 높이 사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예술을 하면 돈이 나오냐’는 주위의 핀잔도 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경기도 평택 출신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차비를 빌려야 했다.

집에 부담을 덜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가출을 했다.

이후 전기관련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면서 전자제품 회사나 대기업을 상대로 사업을 했다.

몇몇의 특허도 가지게 됐고 건축자재나 전원주택 사업을 하면서 돈도 제법 만지게 됐다.

2008년 충남 아산에 옹빔박물관을 만들었다.

부모님의 편안한 노후생활을 비롯해 전통옹기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됐다.

여동생이 20년 동안 모아온 옹기를 전시하면서 자연스레 문화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문화를 전혀 모르는 내가 이런 시설을 만드니 주위에서 염려스런 말이 많았다. 하지만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소박하더라도 갤러리를 만들어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관심을 가지게 되면 실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중물 갤러리는 이런 관심을 표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오자마자 도면을 만들고 갤러리 구상에 힘썼다.

인포메이션을 비롯해 와인바, 갤러리, 세미나실, 작가공방 등이 구성됐다.

마중물은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한바가지 물을 뜻한다.

갤러리를 통해 전북지역 문화예술계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 대표의 소망이 담긴 명칭이다.

하지만 관리가 큰 문제였다.

특히 습기였다.

터널 특성상 습기가 많아 작품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통풍을 막아야 습기가 사라진다는 전문가 조언도 구했지만 해결이 쉽지는 않았다.

진입로 개설도 문제였다.

현재는 좁디 좁은 길을 거쳐야만 갤러리에 접근할 수 있다.

갤러리 구상이야 혼자 해결할 수 있지만 진입로 개설은 행정의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다.

정문 앞엔 각종 나무를 비롯해 아산 박물관의 항아리를 일부 옮겨 경관조성을 했다.

특히 습기가 차는 실내 조성에 큰 공을 들여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갔다.

갤러리가 문을 여니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단위 관람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가족단위 관람객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수학여행단이 이곳을 필수코스로 자리잡기도 했다.

아직은 이렇다할 수익은 없지만 전주지역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게 되니 절반의 성공은 한 셈이다.

비전문가가 만든 공간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문 큐레이터도 뒀다.

하지만 전문성보다 대중성을 띠는 갤러리를 운영하다보니 큐레이터 필요성이 없어져 현재는 혼자 운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지, 서예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다.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기는 분도 계시지만 실제로는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 겁이 없이 도전한 결과일 뿐이다.”

갤러리 한켠에 걸린 글귀가 눈에 띈다.

‘무모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무지 때문이다. 알고서는 행하지 못했을거다.’

갤러리를 만든 이계욱 대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글귀다.

사전에 알았다면 무모하게 이런 대규모 갤러리를 만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지만 지하에 있어도 해후할 수 있는 것이 마중물이다. 빛과 소금이 돼 의미있는 만남과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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