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가는 길-로그아웃등 단편소설 한권에 묶어··· '침묵' 내부소리에 집중

김저운 소설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세상에는 ‘말없음’이 늘 존재한다.

둘 사이의 대화에서도 말없음이 존재한다.

그 말없음은 없다고 해서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니다.

내재돼 있는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다.

미국 대선이 끝났다.

선거에서 정치인, 언론인들은 부동표를 이야기 한다.

특정하게 지지하는 정당도 후보도 없는 것이 부동표다.

이들은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이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항상 관심이 집중되고, 부동표는 항상 키를 거머쥔다.

김저운의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예옥)는 말없음이 갖는 내부의 소리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없음’이라는 표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갈 때 김저운은 오히려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곳에서 소설가가 만나는 것은 소리 없는 자들의 소리들이다.

말없음이란, 억지로 만들어진 침묵, 무언가를 말하려다 제지된 것들, 본디 ‘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강제로 자리 잡은 ‘없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소설이다.

단편소설들을 한 데 묶어놨는데 책의 제목이기도 한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를 비롯해 <청학동 가는 길>, <로그아웃>, <그들도 몰랐던 그들의 진실>, <소도蘇塗의 경계>, <연緣>, <거꾸로 흐르는 강>, <회문回文>이 수록돼 있다.

이 중 <로그아웃>을 보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화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매일 저녁 인터넷을 헤맨다.

일상의 관계에서 상처 입은 그들은 현실의 자신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인격과 배경을 구비한다.

상대에게 자신이 꾸민 사실이 드러날 우려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혜는 ‘고니’라는 인격으로 ‘권태’라는 가명을 쓴 남자를 만난다.

‘고니’는 결코 자신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태 또한 마찬가지다.

그 또한 자신의 인격을 고니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고니와 권태의 대화는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들의 만남은 연속된 분광의 형태가 아니라 선후가 없는 점과 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발화는 누적되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에 지나간 과거와 도래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누군가가 그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관계의 종료와 함께 그들은 깨닫게 된다.

지금껏 그들이 나눈 것은 대화가 아니라 무의미한 혼잣말이었다는 것을.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인격이 나눈 그들의 소리는 네트워크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사라지며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고니와 권태의 대화는 고니가 로그아웃한 순간 소멸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명멸하는 관계들 사이에서 재방송을 보며 키들거리는 인혜는 여전히 자신의 공간에서 고립돼 있다.

김저운 소설가는 부안 출신으로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85년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1989년 <우리문학>에서 소설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 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공저), 휴먼르포집 <오십 미터 안의 사람들> 등이 있다.

전북수필상, 작가의 눈 작품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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