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로  

나라 안팎이 너무 어렵다.

요즘처럼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역시 가장 큰 일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미국이 차지하는 지위를 보나 영향력을 보나 국제정세는 큰 변동을 겪을 것이고, 한반도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선거공약과 실제 대통령의 권력 행사는 다르기 마련이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임은 틀림없다.

실질적이고 냉정한 대응만이 유일한 선택으로 남았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내부적으로 더 큰 불안정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최순실 사태라는 광풍이 끝없이 국가 시스템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보도만 봐도 대통령 연설문 유출에서부터 대기업 상대 강제모금, 인사 비리 등 각종 의혹이 산더미처럼 많다.

국정농단이 이렇게 광범위하고 깊숙했다는 데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그 결과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폭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5%까지 떨어진 여론조사가 나왔고, 부정평가는 80%를 넘기고 있다.

쓰나미라는 말을 써도 어색하지 않다.

이런 처지로는 국제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할 힘을 낼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나라 안의 안정을 되찾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건은 지금의 국정 공백 상태를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내는 일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해법이 쉽게 만들어질 것 같지 않아서 더 답답하다.

정치권 안팎에서 갖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대세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책임총리제가 답이라는 쪽이 있고, 애국심이 있다면 하야해야 한다고 외치는 쪽이 있는가 하면, 길거리와 광장을 중심으로는 탄핵이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 있다.

어떤 방안이 최선인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이유는 있어 보인다.

책임총리제는 사실 가장 정치적인 해결책이다.

헌법 규정 어디에도 '책임총리'라는 단어는 없다.

각료제청권과 해임건의 같은 헌법적 권한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는 게 청와대의 뜻으로 보이는데, 야당은 그 정도로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의 공개적이고 명확한 선언이 선행돼야 논의가 진전될 것이다.

법률적 근거가 없으니 그야말로 정치적인 결단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설사 우여곡절 끝에 책임총리가 들어선다고 해서 과연 권한의 경계가 명쾌하게 정리돼 나라가 잘 굴러갈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건 최대 약점이다.

대통령의 하야는 현시점에서는 수용될 수 없어 보인다.

하야(下野)는 아마 법률용어로는 사퇴라고 써야 할 텐데, 대통령 사퇴야말로 최후의 정치적 카드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하야한다는 이야기는 탄핵이 확정적인 상황쯤 돼야 현실성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법률적 구속이 없고 정치적 판단의 여지가 있으니 다양한 변주가 있을 수 있다는 짐작은 한다.

야당의 2선 후퇴 요구를 '사실상의 하야'로 판단하는 시각도 그래서 나온다.

탄핵은 법률적으로 절차와 과정이 명확하다.

국회 의결과 헌법재판소 결정이라는 과정이 확립돼 있으며, 탄핵 확정 시 대통령 권한 위임이라든지 선거 시행이라든지 하는 일들이 질서 있게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는데 탄핵에 해당하는 위법 행위를 대통령이 저질렀다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는 검찰 수사나 특검수사로 확정돼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모호한 구석이 있으면 지난한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국정 공백이 길어지고 혼란이 가중될 위험도 크다.

남은 임기가 그렇게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다.

내정 수습방안으로 거론되는 세 가지 중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단언할 사람은 없다.

정국상황과 대선주자들의 셈법, 최순실 사태 주역들이 저지른 범법 행위의 경중에 따라 판단은 수시로 바뀔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법률적 강제력이 우세한 탄핵과 같은 수단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단 법률적 절차를 엄격하게 따라가기 시작하면 되돌아 나올 길은 없어진다.

실마리는 법보다는 정치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곳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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