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용  

최순실 사태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한 헌법 유린 행태가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이었다.

아홉 겹의 담 너머에서 그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결과론인데 비정상의 정상화는 청와대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최고 권력자의 측근이나 친인척 관련 비리 사건은 역대 정부를 거치며 거의 예외가 없었다.

비선 실세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권력형 비리는 잠시 잊을만하다가도 정권 이양을 거치면 터져 나오는 단골 메뉴가 됐다.

비리 행위는 당대 정부에서 불거져 사법처리까지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차기 정부로 넘어가 사건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1980년대로 거슬러 가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5공 시절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을 지냈던 전 씨는 노태우 정부 출범 직후인 1988년 3월 공금횡령 등 혐의로 당시 대검 중수부에 의해 구속수감됐다.

전 씨 수사를 맡았던 인사는 대검 중수과장이었던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다.

이 전 총장은 작년 초 박근혜 대통령 민정특보에 임명되기도 했다.

2002년 검찰총장 취임 당시 후배들에게 "진정한 무사는 추운 겨울날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비장한 말을 던졌다.

검찰총장 재직 때 서울지검 강력부 수사관 등에 의한 피의자 구타 사망 사건이 터졌는데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홀연히 검찰을 떠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인 박철언 전 의원이 김영삼 정부 초기 슬롯머신 사건에 휘말렸다.

검사 출신인 박 씨는 6공 황태자로 불리며 정권 실세로 부상했으나 이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 6개월을 복역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아들 현철씨가 '소통령'으로 대접받으며 위세를 떨쳤으나 1997년 한보 사태가 터지면서 기업인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 조세포탈 등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당대 대통령 재임 중 아들이 구속된 첫 사례였다.

김대중 정부는 세 아들이 문제가 됐다.

'홍삼 트리오'로 불린 홍일·홍업·홍걸 형제는 대형 비리 사건에 잇따라 연루됐고 홍업·홍걸 씨는 구속을 면치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 씨는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 개입, 금품을 받은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건평 씨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국세청 인사 때마다 '비선 개입' 구설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에선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실세 역할을 했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신조어를 낳았다.

2011년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서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최순실 사태로 비선 실세가 주무른 국정의 난맥상이 또 한 번 수면위로 부상했다.

역대 측근 비리 사건에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사안이 심각하다.

최 씨와 관련한 거의 모든 의혹이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100만 촛불 민심은 이를 일축하고 하야를 요구했다.

측근 인사들의 비리 관련 의혹 내용이 검찰 수사나 언론 보도를 통해 줄줄이 흘러나온다.

정말 상식 밖이다.

최 씨와 주변 인물들은 국정 프로젝트 등을 명분 삼아 이권 사업이나 단체를 만들어 혈세를 챙기거나 유수의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다.

고위 공직자는 물론이고 대기업 오너 관련 인사나 거취에 개입한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멀쩡한 광고회사를 협박해 지분을 차지하려다 말을 듣지 않자 아예 회사를 문 닫게 하려고 시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쳐 준 데서 그친 게 아니었다.

자격도, 권한도 없는 인사들의 '갑질'이 난무했다.

최근 수감돼 있거나 검찰 조사를 받은 측근 인사 중 일부는 혐의 사실과 관련해 '대통령이 시켰다'거나 '대통령의 뜻으로 알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것인지, 실제 사실이 그렇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규명돼야 한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임박했고 그 결과에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