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라운지 최재석 언론인  

지난달 말 처가 쪽 가까운 친척이 세상을 떠났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7년을 요양병원에서 지냈다는 사실을 문상을 가서야 알았다.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힘들고 긴 시간이었을 것 같다.

작년 여름부터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그날 저녁에는 형의 장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집에서 장인을 돌보던 장모가 더는 감당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요즘 만나는 지인의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척 중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듯했다.

도시 외곽에서 요양병원 간판이 심심찮게 눈에 띄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그만큼 요양병원이 우리 생활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요양병원 수는 올 1월 현재 1천502개에 달한다.

2006년 361개에서 10년 만에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요양병원은 의료기관 중 가장 급성장한 분야로 꼽힌다.

인구 고령화로 만성 노인 환자가 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이 활성화된 영향일 것이다.

요양병원이 급증했지만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 관련 정보를 얻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현재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주기적으로 요양병원 적정성을 평가해 그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심평원 홈페이지에는 2013년 평가 자료가 최신이다.

2015년 적정성 평가 자료는 올 4월 초에야 공개될 예정이다.

의료 소비자들은 그나마 2년 전 평가 내용을 요양병원 선택에 참고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복지부 담당과는 평가 결과에 대한 해당 기관의 이의 신청 등 검증 기간이 필요해서 공개가 늦어진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서도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릴까 하는 의구심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요양병원 인증제'라는 것도 있다.

의료법은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병원급 의료기관의 인증을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공표된 인증 기준의 일정 수준을 달성한 의료기관에 4년 간 유효한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병원이 자율적으로 인증을 신청할 수 있지만 요양병원은 2013년부터 의무적으로 신청해야 한다.

인증을 받은 요양병원은 보통 병원 벽면에 이를 알리는 큰 플래카드를 내건다.

어머니 요양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을 보고 좀 안심을 하다가도 인증 기간이 4년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4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복지부의 담당자는 인증을 받은 요양병원이라도 작년 하반기부터 중간점검을 하고 있다고 했다.

중간점검 결과라도 신속히 공개되길 바란다.

한마디로 국가 행정력이 요양병원 급증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픈 가족을 요양병원에 장기간 맡겨야 하는 보호자 입장에서는 친절한 간병인이나 간호사를 믿지만 여러 가지로 불안한 게 사실이다.

국가가 좀 더 개입해 제도적으로 요양병원이 잘 운영되길 바라는 게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달 3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하도록 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언론에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국가기관이 만성 질환 노인 환자의 인권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 권고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인권위에 따르면 유엔 인권 최고대표가 2012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 낸 연례보고서는 국제규범에서 적절히 규제하지 못하는 노인 인권 문제의 대표적 사례 9가지를 열거했는데 그중 하나가 '장기요양'이다.

당시 보고서는 의사 표현능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한 만성 질환 노인들이 장기간 한 장소에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권 침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권위가 2014년 실시한 '노인요양병원 노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는 86개 병원에서 '가림막 없이 기저귀·의복 교체', '장기간 신체보호대 사용', '고함이나 윽박지르는 행위', '치료 목적 외에 약물 과다 투여' 등 다양한 인권 침해 사례가 확인됐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 환자라 하더라도 엄연한 인권이 있다.

그들이라고 왜 수치심이 없겠는가. 늙고 병들어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간병인이 어머니 기저귀를 갈 때 일부러 자리를 피하곤 한다.

노인 환자의 인권도 그 누구의 인권만큼이나 소중하다.

지금 추세라면 우리는 대부분 생의 마지막 길에 요양병원 신세를 질 가능성이 크다.

요양병원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모두에게 한번은 닥칠 일이다.

지금도 가족을 병원에 맡긴 후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움도 차츰 무뎌진다.

어느덧 마음속으로 환자의 치료를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참으로 세월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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