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서 태어나 광주서 사회생활 아이 교육환경 생각 귄오서둘러 2013년 5년 준비한 포도농사 실패 2년간 교육 받아 귀리 농사 지어 가공시설 갖춰 시각디자인 경험 제품 포장 등 경쟁력 승부

최근 번잡한 도심을 떠나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귀촌을 고민하거나 은퇴 이후 삶을 위해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라북도도 지난 2012년 광역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귀농귀촌지원센터’를 열고 귀농․귀촌인 유치에 적극 나섰다.

특히 전북혁신도시에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수산대학 등이 이전하면서 전라북도가 귀농 1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안고 귀농한 이들이 정착한 농촌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준비 부족 등의 이유로 다시 도심으로 떠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농도 전라북도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이미 정착한 귀농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봤다.
/편집자주


김제지평선귀리영농조합법인 박미라(여․39) 대표는 보기 드문 젊은 30대 귀농인이자 여성 농업인이다.

또 전직 산업사진작가 활동을 하던 그의 이력은 농업과 거리가 있다.

김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박 대표는 경기도의 한 예술고등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도심 생활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대학 생활과 이후 사진작가 활동을 하면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전략적인 ‘귀농’을 선택하고 고향인 김제로 딸과 함께 돌아왔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도심이 아닌 농촌을 선택했고 경제적인 이유로 주말부부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던 포도농사를 실패하면서 영농 준비에만 2년을 고스란히 보냈다.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을 무기로 여성에게 녹록치 않은 농업의 벽을 허물고 안정적인 영농에 진입하고 있다.

현재 귀리와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박 대표는 귀농은 은퇴 이후 소일거리가 아닌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생존’이라고 강조했다.


△전략적인 준비에도 첫 영농은 실패

박 대표는 김제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심 생활이 더 익숙하다.

경기도 안양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고 이후 광주에서 대학과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편 박세훈(45)씨와 가정을 꾸린 곳도 광주였다.

하지만 박 대표는 오랫동안 도시를 고향으로 돌아올 준비를 차근차근 이어왔다.

도시의 바쁜 일상을 살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많은 부분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환경은 아이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귀농을 결심했다.

박미라 대표는 “복잡한 도심은 자동차 매연이 그대로 노출된 인도는 물론 개구리주차 된 차량으로 아이와 함께 길을 걷는 것조차 곤혹스러웠다”며 “특히 유모차를 끌고 가다 인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만날 때면 아이의 안전한 환경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도심에 몇 없는 공원에 가야 비로소 아이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뛰놀 수 있었다”며 “딸아이가 친정집에 와서 즐겁게 뛰어 놀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 하루 속히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렀다”고 덧붙였다.

서둘러 귀농을 했지만 준비와 전략이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부부가 함께 직장을 그만 둘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 박 대표는 아이만 데리고 내려왔다.

남편은 그대로 광주에서 직장을 다녀야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주말부부’가 됐다.

박 대표는 “집 옆의 텃밭을 가꾸는 것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소득을 낼 수 있는 작물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겨울, 박 대표가 정착한 김제시 백구면의 유명한 작물이면서도 장기적인 수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포도농사를 시작했다.

부부가 5년 동안 적금을 들며 준비한 영농자금과 정책자금을 더한 거금으로 포도밭을 구입했지만 큰 실패를 맛봤다.

겨울에 사다보니 포도나무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2~30년이 넘은 나무들은 상당수 죽은 상태였다.

이미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갈아엎고 어린 나무를 심어보았으나 싹이 나질 못했다.

이미 오랫동안 포도농사를 지어 토질도 좋지 못한 탓이다.

박미라 대표는 “시간과 경제적인 손해보다 사람에 대한 상처가 더 컸다”며 “시골에서 자랐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잘 알아보지도 않고 모르고 덤빈 잘못도 있지만 솔직하게 대하고 믿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귀농은 사업이다”

잘못 산 포도밭으로 큰 손해를 입었지만 남은 토지와 고정적인 남편 수입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포도밭 이후 2년여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다음 작물을 준비했고 박 대표의 선택은 ‘귀리’였다.

이번에는 주변 농민들과 함께 귀리 농사를 짓고 이를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수익을 만들 수 있었다.

철저한 시장분석과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한 것이 성공요인이었다.

소개 받았던 귀리의 판매과정을 찾아보고 가격을 조사했다.

각 지역에서 판매되는 현황과 가격을 알아보니 수익률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계 10대 푸드에 선정될 정도로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받으면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정책자금’을 받아 가공시설도 갖춰 수익을 더 높일 수 있었다.

초기에는 SNS와 인터넷마켓 등 다양한 판매방법을 시도했으나 수익성이 오프라인 매장 판매에 주력했고 특히 제품 포장 등 시각디자인 영역에 사진을 찍던 박 대표의 경험이 더해져 경쟁력이 높아졌다.

이와 별도로 시작한 하우스 딸기도 박 대표의 안정적인 농업 수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박 대표는 “시골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며 “이른 새벽부터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작물을 관리해야 하고 저녁시간에는 새로운 상품을 연구하고 서류적인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등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귀농인은 기존 농민과 달리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할 수 있고 도시에 살던 경험을 농산물에 적용하면 소비자들의 기호를 맞출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그러나 귀농은 여유로운 은퇴 생활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농업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미라 대표가 꿈꾸는 6차 산업

박 대표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부부가 함께 귀농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먼저 경험한 뒤 이주를 결심해도 늦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조언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자신의 ‘포도밭’ 경험을 상기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내가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해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경험을 해보니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시작을 하면 차곡차곡 진행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부터 한꺼번에 받는 것보다 눈높이에 맞춰 필요한 지원사업을 선택해 요청하며 규모를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의 성공으로 가족들도 영농에 합류하고 있다.

처음부터 도움을 줬던 부모님은 물론 이모와 친동생도 직장을 그만두고 합류했다.

박미라 대표는 “시범사업을 선정된 귀리 처리 시설을 올해 안에 설치하고 딸기 농사 등과 체험학습을 연계한 6차 산업인증을 받을 예정이다”며 “아직 식품회사 또는 영농조합법인으로 성장할지 알 수 없지만 대를 이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농업의 미래가치는 무엇보다 크다”며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재배하고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고 말했다.

/최홍욱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