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외친 '미투' 유리안에 갇히다
살기 위해 외친 '미투' 유리안에 갇히다
  • 이신우
  • 승인 2018.03.29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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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배제 '핀스룰' 이어져
'유리천장방지법' 국회 통과
직장인 51% '유리천장' 존재
여성 65.7% 직장내 유리천장
일-육아 양립 인프라 가장 시급
미투운동 악용 사례 밝혀져
남성 무관한 피해자 되기 싫어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남녀의 민감한 성문제를 둘러싸고 ‘新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다.

미투 고백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위드 유’(#WithYou)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미투 운동’은 여성들과의 접점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펜스 룰’을 낳았고 신 여성차별도 불러왔다.

급기야 ‘유리천장’(여성이 승진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 막힌다는 뜻)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절반이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유리천장방지법(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안)’도 의원 발의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도 나섰다.

직장 내 ‘펜스룰’에 대한 엄중조치를 공언했다.

하지만 법적 모호성 때문에 처벌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투 운동’의 등장은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

‘미투 사회’ 그 후를 따라가본다.
/편집자주  


▲‘미투 운동’ 그 후...

# 배우 송원(31)이 연극 연출가 최경성(50)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8년 전 당한 성추행 사실을 도내 연극계 최초로 폭로한 것이다.

 송원은 “성추행 사건은 단원을 모집하기 위해 만든 전북대 뮤지컬 동아리 MT에서 일어났다.

최 대표는 대천으로 MT를 떠나는 당일 집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추행은 차에서부터 시작됐다.

자신의 여자친구와 이별 이야기를 하며 손을 주무르고 허벅지를 더듬었다”고 말했다.

“숙소에서 짐을 내려놓은 최경성은 극단 문제를 상의하자고 제의했고 송원과 식사를 한 뒤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으나 도중에 최경성이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송원은 “최 대표가 모텔에서 극단 얘기를 더 하자며 팔을 강하게 붙잡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모텔에 들어선 순간부터 치욕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침대 옆자리를 두드리며 자는 모습을 쳐다만 볼 테니 옆에 누워서 자라고... 또 제 귓볼을 손가락으로 굴리듯 만지며 지금 네 태도 귀엽다고 했다”고 했다.

이후 송 씨는 집안 사정을 핑계로 극단을 탈퇴했다.

송원은 “최경성은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내가 극단을 나갔다고 소문냈다”고 말했다.


# 도내 연극계에서 두 번째 성폭력 피해 고백이 나왔다.

한 극단의 대표가 소속 배우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비슷한 폭로였다.

전주연극협회 소속 연극배우 A씨(여)가 극단 대표 B씨에게서 성폭행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B씨와 밤늦게 술자리를 갖게 됐다...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곳은 모텔이었다...집요한 설득에 모텔에 들어갔고 신세한탄을 하더니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거세게 저항했지만 B씨를 이겨낼 순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성폭행할 생각이었다...”

A씨는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직후 A씨는 자신이 준비하던 공연도 포기한 채 극단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 이번엔 여성 농업인의 미투 고백도 이어졌다.

한 여성 농업인이 인•허가를 빌미로 도내 한 지자체 공무원으로부터 상습적인 추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접수했다.

여성 농업인 A씨는 “B씨가 지난해 3월 승용차 안에서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6월에는 허벅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당시 저항하면 앞으로 보조금 사업에 따른 인‧허가를 받지 못할 것 같아 무섭고 두려웠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는 심경을 밝혔다.

또 “B씨가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2~3주에 한 번씩 자신의 집에 찾아와 술을 마셨고 집에 귀가할 때는 운전을 해달라고 했다...모든 성추행은 B씨의 차를 대신 운전해주는 과정에 이뤄졌으며 잠자리 요구를 거부하자 머리와 뺨을 폭행하기도 했다...갑‧을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 어떠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으나 미투 운동에 용기를 냈다”고 토로했다.


현직 여검사가 한 방송사에 직접 출연해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한 이후 ‘미투 운동’은 급물살을 탔다.

이후 ‘미투 운동’은 들불 처럼 번져갔다.

연극계에서 연예로, 문화계를 넘어 체육계, 문학계, 정관계, 학계를 휩쓸었다.

‘미투 운동’은 ‘펜스룰’로 이어졌다.

‘펜스룰’은 여성 배제라는 또 다른 성차별 논란을 낳고 있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발언에서 유래됐다.

미국에서의 ‘펜스룰’ 성적 논란에 따른 불필요한 도덕적 비난들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됐지만 한국의 ‘펜스룰’은 회식자리에서 여성 배제, 메신저로 업무지시 등 여성과의 대화 단절을 의미한다.

‘펜스룰’에 이어 ‘유리천장’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여성이 승진 시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 막히는 것을 뜻하는 ‘유리천장’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지난달에는 ‘유리천장방지법’이 의원발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문제는 이 같은 여성 배제에 대한 제도 개선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나 직장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직장 내 유리천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인’이 직장인 819명을 대상으로 내놓은 ‘직장 내 유리천장’에 대한 조사 결과는 주목할만하다.

이들 중 여성은 65.7%가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남성의 경우도 41.3%가 같은 의견을 보였다.

조사 대상자의 66.4%는 유리천장을 실제 체감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또 이들 중 절반 이상(58.3%)은 유리천장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리천장을 없애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조성’(32.8%)이 가장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또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 타파’(23.7%),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인식 개선’(17.6%), ‘여성직원에 대한 기업들의 대우 개선’(12.7%), ‘유리천장 타파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7.1%) 등도 나타났다.

펜스룰이 취업 시장에서도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나온다.

정부는 여성 배제 현상, 소위 ‘펜스룰’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법적 정의나 기준이 모호해 실제 적발이나 처벌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 취업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에서 개최되는 취업설명회 건수는 지난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취업준비생들의 고민은 취업 전문 인터넷 카페에도 종종 등장한다고 한다.

‘미투 운동’을 악용한 각종 사건들도 밝혀지고 있다.

미투와 무관한 자신도 피해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많은 남성들을 펜스룰로 내몰고 있다.

 

'미투' 고발 넘어 몰라줘서 '미안'으로

▲2차 피해와 대책 필요한 사회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 피해 방지
누리꾼 53% 악용-변질 우려 응답
피해자 지지 '위드유' 공감-이해 필요

미투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 이미 시작됐다.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이 그것이다.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세미나도 열렸다.

두 달 가까이 미투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성폭력 피해자들이 중심이 된 단체가 첫 발을 뗀 것이다.

‘미투 연대’는 폭로를 넘어 피해자들 스스로 생존을 위해 모인 임의 단체로 권력형 성폭력과 2차 가해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각계각층서 발생하는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사태를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고 재발방지를 위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다룰 전망이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미투 운동’에 대해 누리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SNS 등에 올라온 6,984건의 글과 9만4,124건의 댓글을 토대로 ‘미투 운동’에 대한 누리꾼들의 의견을 알아본 결과 누리꾼들은 ‘미투 운동’의 악용과 변질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다.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는 이 운동이 ‘악용 및 변질되고 있다’, ‘미투 운동의 근거와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전체의 53%로 가장 높았다.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 처벌을 확실하게 하자’는 의견은 전체의 31%로 2위를 차지했다.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성이 오히려 2차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미투 이후’를 고민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상으로 복귀한 피해자를 선입견 없이 지지하고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고 피해자의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조직적 차원에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피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지지하고 함께 하는 이른바 ‘위드 유’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미투 가해자는 지목되는 순간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회생불능의 처지로 치닫게 된다.

설사 무죄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라는 의혹의 꼬리표는 떼어낼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선언을 무시해선 안 된다.

2차 피해의 위협에도 미투를 외치는 피해자들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미투 운동에서 변질된 ‘펜스룰’의 태도보다 서로의 안위에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권지현 전북성폭력예방치료센터장은 “가해자는 자신의 권력으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침묵해왔고 다시 살기 위해 미투 운동에 함께 했다”고 강조했다.

권 센터장은 특히 “침묵을 깨기 위해 누군가의 용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우리 사회는 성폭력 가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 센터장은 또 “미투 운동은 개인의 아픔을 헤집고 직시하며 생을 걸고 살아남은 자들의 말하기이자, 우리 사회의 수많은 조직과 공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격과 자존감, 생업을 위협당하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화돼 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투 운동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대해서 경계하는 입장도 내놨다.

권 센터장은 “이들 부정적 시선은 여성 혐오적인 표현들과 함께 성폭력을 어쩔 수 없는 남성문화로 정당화한다”며 “성폭력을 근절하고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구조에 대해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책임감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신우•정병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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