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문재인 정부에게 역대 정권이 지속해온 것을 반복하는 ‘관리형 농정’을 원했는가? 아니면 ‘개혁농정’을 원했는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농민들은 농정 패러다임의 근본 변화를 기대했다.

문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현재, ‘관리형 농정’이라는 게 농업계의 중론이다.

역대 정부와 비교했을 때 문재인 농정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지난해 6월, 80㎏ 기준 12만 6,767원까지 떨어졌던 쌀값을 올 5월5일에는 17만 2,264원까지 끌어 올렸다.

대통령이 직접 발의한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명문화했다.

농업이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기여한다는 사실을 명시함으로써 농업의 위상을 높이고 농민이라는 직업의 신성함을 국가가 인정했다.

‘김영란법 시행령’이 허용하는 농축수산물 선물비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등 농업계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고원병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가축질병에 대해 예방중심의 방역체계를 구축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이 결과 2018년 5월을 기준으로 이전 1년과 이후 1년의 AI 발생건수는 383건에서 22건으로 대폭 줄었다.

같은 기간 살처분 마릿수도 3,787만 마리에서 654만 마리로 크게 감소했다.

그렇지만 농업계는 문재인 농정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서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후보 시절 “농민 목소리를 대변하는 농업비서관을 임명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농정을 진두지휘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은 2개월째 공석이다.

게다가 6·13 지방선거 직후 있을 후보자 지명과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농정 수장 공백 사태는 앞으로도 두 달 가량 더 지속될 것이 확실시된다.

자칫 장관 공백 상태에서 쌀 목표가격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다.

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차관은 국무회의 의결권이 없다.

새 정부의 농정개혁 의지가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명박-박근혜 농정을 무관심, 무책임, 무대책의 ‘3무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집권하면 농정철학과 기조를 확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정운영의 청사진 격인 ‘100대 국정과제’를 들여다보면 기존 경쟁력 중심의 농정에서 바뀐 게 거의 없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은 1호 농정공약인 ‘농어업, 농어촌특별위원회’ 설치에 미온적이다.

농정공약 이행률도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한 시민단체가 ‘나라를 나라답게’에 나온 공약 1,165개 전체를 평가했다.

농정공약은 45개인데 완전하게 이행된 공약은 하나도 없다.

후퇴한 것도 있다.

예산규모와 배정은 국정철학을 읽는 바로미터다.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는 사업에 우선 배려를, 가장 많은 배분을 하는 게 예산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박근혜 정부가 편성한 2017년 농업예산은 국가 전체 예산 약 400조원 가운데 겨우 3.6%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8년 국가 전체 예산이 전년 대비 7.1% 증가할 때 농식품부 소관 예산은 겨우 0.08% 늘었다.

사실상 퇴보다.

실망이 크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거대 담론과 구상만으로는 안 된다.

거대 담론을 실현할 과제와 비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책임지고 추진할 사람과 기구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거보를 내딛었다.

농정 분야에서도 성큼성큼 시원스런 문 대통령의 거보를 보고 싶다.

/김종회 국회의원, 민주평화당 전북도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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