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이 아직은 이른 가을 초입인지라 선운사를 거쳐 도솔암에 이르는 계곡 길은 한산했다.

도솔암을 찍고 돌아 와 풍천장어를 점심으로 먹을 요량으로 걸음을 서둘렀으나 도솔암에 이를 무렵엔 벌써 점심 때가 되고 말았다.

건성으로 암자를 둘러보고 돌아서는 찰나에 반가운 표지판이 눈길과 마주쳤다.

‘점심 공양시간 12:00~13:00 ‘‘공양’ 이라! 부처 앞에 음식물이나 재물 등을 바침과 함께 사찰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공양이라 한다.

속세의 천박한 표현으로 절에서 주는 공짜밥이다.

허기진 배가 그냥 발길을 놔 줄리 없다.

부처님을 믿는 신도도 아니건만 염치불구하고 공양소로 발을 들였다.

잡곡밥 위에 온갖 나물을 수북이 쌓아 천연 발효식초 간장 된장 고추장 매실청까지 넣은 후 김가루로 토핑 장식을 하면 한 대접 가득한 절밥 공양식이다.

허겁지겁 몇 번의 큰 수저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큰 그릇이 시원하게 바닥을 드러낸다.

그제서야 건너자리에서 깨질거리며 밥을 먹고 있는 아이를 나무라는 한 엄마의 꾸지람 소리가 들린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 거라고 그래?” 한 수저 가득 입에 넣으며 시범까지 보이는 엄마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입은 이미 닫혀있다.

“엄마는 이게 뭐가 맛있다고 그래? 맨 풀만 있잖아”“ 허허, 인스턴트 식품에 맛들여진 아이들에겐 절밥이 맛이 없지요” 결국 모자의 밥그릇 실랑이는 옆에 계신 비구니 스님의 조정으로 일단락 됐다.

백양사 천진암 주지스님이신 정관스님은 “ 음식 자체에는 에너지가 있고, 가정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하는 음식처럼 사찰 음식은 몸과 마음이 편한해져 수행이 잘되기 위한 음식” 이라고 설명하셨다.

스님의 사찰 음식에는 식재료와 나, 음식을 먹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배려와 관계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나는 굳이 사찰음식 예찬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사찰 음식은 최소한의 어울리는 양념을 하되 재료의 본질을 살려준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

가공된 조미료에 묻혀 본연의 맛을 잃어버린 요즘의 음식과는 결이 다르다.

화려함과 달콤함으로는 요즘 인스턴트 식품을 따라갈 수 없지만 계절과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며 그것을 고스란히 살려 하나가 되는 깊은 맛은 그와 견줄 바가 아니다.

음식은 잘 먹는 것보다 제대로 먹는 것이 보약이다.

절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노라면 원초적인 본성의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화려하게 화장하지도 않고도 예쁘게 끌리는 매력, 각자 다른 곳에서 왔지만 한 곳에서 모이면 하나로 융해 될 줄 아는 아량,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각자의 향이 고스란히 베어 나오는 개성, 무엇보다 담백한 맛으로도 남을 건강하게 해 줄 줄 아는 순수한 희생이 절절이 묻혀져 있다.

절밥은 남기기 않는 게 불문율이다.

자연으로부터 얻어 온 식재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음식을 먹게 해 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 정도의 마음만으로도 음식을 함부로 남기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나아가 음식이 맛있네 없네 보다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모두 공양 음식이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우리가 먹는 것이다.

’공양’의 키워드는 ‘공경’이다.

그래서 음식은 식재료나 만드는 방법은 다를 지언정 먹는 사람을 위한 공경심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생각만 있다면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파렴치는 없을 것이다.

온갖 음식이 차려 질 추석이 다가온다.

올 추석 차례상에 오를 음식들은 짧은 가을 햇볕 아래서 혀를 빼물면서까지 기를 쓰며 자란 귀한 곡식들이다.

올 추석에 먹을 음식은 모두 ‘공양’ 같기를 바란다.

/서향숙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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