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 맞아요? '무우'가 맞아요?“ 방송 일을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애매한 표준어 질문을 받곤 한다.
국어 표준어상 정답은 ‘무’다.
그 동안 그러려니 하고 써왔던 '무우말랭이', '무우생채', '무우김치'에서 ‘우’자는 빼야 바른말이 된다.
‘무’는 이렇게 애매한 표기와는 달리 우리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채소중의 하나다.
무는 아무 땅에서나 잘 자란다.
마트든 시장에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사먹는 가격도 부담 없이 참 착하다.
그야말로 어느 것 하나 타박할 게 없는 채소다.
무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종류만 해도 참으로 다양하다.
무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깍두기.나박김치.동치미.비듬김치.또 무나물, 무조림, 무찌게.무말랭이,무소고기국.무전.무절임 등 가짓수를 세기가 벅차다.
게다가 무는 차로도 마신다.
무만큼 창조적 응용력을 가진 음식도 드물다.
무는 다른 재료들과도 잘 어울린다.
특유의 시원한 맛으로 최고의 육수를 낼 때 없으면 허전한걸 보면 다른 것들과의 친화력이나 융화력 또한 대단하다.
무는 사철 음식이지만 그 중 가장 맛있는 때가 10월부터 김장철인 12월까지다.
그래서 가을무는 인삼보다 좋다고 했다.
단단한데다가 시원하고 아삭하다.
달큼한 맛까지 더하니 한 뿌리 덥석 물고 나서면 그 맛을 어디 인삼에 비하랴.
가을 무를 인삼에 견주는 것은 그 식감보다는 무속에 들어있는 풍부한 영양성분 때문이다.
무에는 비타민A, 비타민C, 식이섬유 등이 들어있다.
이들 성분은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보충해 줄뿐만 아니라 위에서 소화를 돕고 장에서는 연동운동이 잘되게 한다.
과식하여 속이 더부룩할 때 무를 먹으면 위가 편해진다.
소화도 빠르다.
무에 있는 디아스타제와 아밀라제는 위액 분비를 촉진해 음식물 소화가 잘되게 하는 천연소화제인 셈이다.
그뿐이랴.
술 마시고 속이 쓰리거나 숙취증이 있을 때 무를 갈아 즙을 내어 마시면 천연위장약으로도 손색이 없다.
무즙은 담을 삭여주는 거담작용을 하기 때문에 감기에 걸렸을 때 엿을 넣고 즙을 내서 먹으면 감기기침에 좋다고 하니 이만한 천연영양제가 어디 있으랴.
지난 주말 시골 텃밭에서 무를 뽑다가 문득 시인 이상국의 ‘무밭에서’란 시가 떠올랐다.
“어느 날 농부의 손에 뽑혀나갈 때 / 저 등을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섰을까 / 무밭을 지나가다가 군데군데 솎여 나간 자리를 보면 /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 손을 넣어보고 싶다”무가 흙을 툴툴 털고 뽑혀나간 자리에는 뭐가 남았을까? 그냥 빈 구멍은 아닐 게다.
다음 해를 기약하는 막연한 약속이든, 최선을 다 해 단단한 무를 만들어 냈다는 뿌듯한 보람이든, 손을 넣어보면 따뜻한 온기가 전해 질 무언가가 분명 남아 있을 것 같다.
문득 내가 살며 지내 온 자리에도 그런 온기를 남기고 싶은 생각이 스쳤다.
가을 보약이라는 무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설겅설겅 썰어본다.
단단한 무 사이에서 가을 물이 뚝뚝 베어 나온다.
보디빌더의 근육처럼 단단한 이 녀석도 알고 보면 흙 속에서 실오라기 같은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 조금씩 생을 늘려 온 것이다.
그런 사연을 알기에 단단한 무를 만지는 촉감이 더 정겹다.
나도 그리 살아보면 좋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가을, 무처럼 단단하게 살아보기‘
/서향숙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