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 다듬어/ 젓국에 절여 파김치를 담근다/폭 익혀 /뜨거운 밥에 걸쳐 먹으면 /삭아진 젓갈의 감칠맛 /매콤한 훈기가 /코밑에서 쿵쿵 인다/빨리 파김치와 밥 먹어야지/침이 고여 안 되겠다."

한복선 시인의 ‘파김치’라는 시의 앞부분이다.

이 시를 읽으며 파김치를 상상하노라면 정말 침이 고인다.

파는 그 맛으로만 우리 몸에 헌신하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파김치가 될 정도로 지친 사람에게 보약 같은 원기를 제공한다.

파김치는 맵지만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으로 파만한 게 없다.

또, 다른 음식의 독을 해독하여 양기를 돌게 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파 중의 왕 대파는 우리 몸의 땀구멍을 열어 땀을 나게 해서 찬 기운을 몰아내 막힌 코를 뚫어주고 변비가 있을 때 속을 뚫어준다고 한다.

영양소도 풍부하다.

단백질, 칼슘, 철분, 엽산과 비타민A, B, C가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C는 파 100g당 21mg으로 사과(4~10mg)나 양파(8mg) 보다 훨씬 많다.

이만하면 뜨거운 밥에 걸쳐 먹는 파김치는 코밑에서 쿵쿵이는 매콤한 훈기와 함께 먹는 보약인 셈이다.

이렇게 파는 맛과 영양소가 나무랄 데 없는데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를 왜 ‘파김치’가 되었다고 하는 마뜩잖은 표현을 붙여줄까?파는 다듬어 놓아도 그 꼿꼿함을 잃지 않는다.

옛 시인이 짙푸른 녹음을 푸른 파에다 빗대어 청총(靑蔥)이라고 노래했을 정도로 파는 파릇파릇 생기 넘치는 식물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그 꼿꼿한 파의 기개도 소금에 절이면 사정이 달라진다.

축 늘어져 흐물흐물해진 꼴 어디에서도 예전의 생기발랄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채소 대부분이 소금으로 절임을 당하면 숨이 죽기 마련이지만 파는 전과 후가 다른 채소보다 더 극명하게 달라서 붙여진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정조 실학자 이덕무가 《청장 관전서》에서 피곤한 모습을 일러 “다리에 힘이 없어 마치 파김치처럼 늘어 졌다”고 표현 했다 하니 ‘파김치’의 표현은 요즘 것이 아닌 듯하다.

피곤에 치쳐 ‘파김치’가 된 몸을 다시 ‘파김치’로 원기 회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땅속에 깊은 뿌리로 음기를 머금고 하늘로 곧추세운 줄기로 양기를 내뿜으니 원기 충만하고도 남음직하다.

파는 요모조모 버릴 데가 없다.

대파를 손질할 때 뿌리 부분이 흐트러지지 않게 손질하여 깨끗한 물에 씻어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감기 걸린 데 먹으면 좋다.

겨울에 수확하는 대파에는 잎이 크고 뜯었을 때 나오는 끈끈한 진액인 ‘만난’이라는 성분이 있다.

이는 위벽을 보호하고 단맛을 더욱 높여준다.

길이가 짧고 대가 얇은 쪽파는 대파보다 수분과 진액이 적고 매운맛이 덜 하기 때문에 김치 양념에 넣거나 그대로 파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파의 진가는 역시 라면 끓일 때다.

‘라면에 파송송’ 이라는 표현이 유행어일 정도로 라면에 파는 그야말로 ‘소확행’이다.

“오늘 나는/파김치 되어 집에 왔다. /일을 많이 한 날/내 몸이 삭아 녹녹한 맛이/내일을 희망한다./기분이 좋다”.

한복선 시인의 싯귀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 파김치로 입맛을 다시며 기운을 내본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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