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만큼 억울한 식물도 드물다.

주로 못생김의 대명사로 애꿎은 호박을 내세운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며 대놓고 깔본다.

아무리 멋지고 예쁘게 꾸며본들 그 본바탕이 어디 가겠느냐는 표현을 하필이면 호박에 비유한다.

아예 호박 꽃도 꽃이냐며 위험한 성희롱까지 한다.

다 찢어지고 헤져 모양이 흉측할 때도 ‘우박 맞은 호박’같다고 표현한다.

음흉하고 엉큼한 사람들을 일컬을 때 왜 뒤에서 호박씨를 깐다고 둘러대는지 모르겠다.

우리 속담 중에는 '실없는 짓으로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는 뜻으로 "시러베장단에 호박 국 끓여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한 술 더 떠 ‘상대방이 완고하여 도저히 요구를 들어줄 가망이 보이지 않을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애호박 삼 년을 삶아도 이빨도 안 들어간다’며 어린애호박까지 들먹거린다.

도처에서 이렇듯 호박을 하대하고 조롱하니 놀부의 취미가 ‘호박에 말뚝박기’인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백 번 몸을 낮춰 호박 꽃의 향이 그다지 좋지 않고 모양새가 그리 썩 예쁘지 않음은 인정한다 치자.

하지만 호박이 그렇게 뭇사람들의 놀림을 당을 정도인지 그 억울함을 따져봐야겠다.

호박 꽃도 엄연한 꽃이다.

초여름 무렵 노랗게 활짝 피어 벌들이 다투어 모여드는 호박 꽃을 보면 화려하고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 호박 꽃이 지고 나면 그 아래에서는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튼실한 호박이 달린다.

못생겼느니 실없느니 하며 희롱하지만 호박만큼 사람, 특히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식품도 드물다.

늦가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늙은 호박은 산모들의 산후 붓기를 내려주고 호박 속의 비타민 E는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카로틴이라는 성분은 피부미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이 카로틴은 항암효과가 뛰어나다.

호박 속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면역력 강화와 감기 예방에 탁월하다.

여성들의 냉증 예방뿐 아니라 풍부한 철분과 칼슘 그리고 비타민C는 빈혈 예방으로 여성을 지켜준다.

그뿐 아니다.

L 트립토판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은 우울증 개선을 도와주고 변비예방 및 다이어트에도 좋다 하니 이쯤이면 호박은 만병통치 예방약의 다름 아니다.

어디 여성에게만 좋으랴.

늙은 호박에 풍부한 셀레늄은 남자들의 전립선염 발병 확률을 낮추고 남성 불임증도 막아준다.

노란색을 내는 루테인은 암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시력을 보호하는 영양제가 된다.

미국 식품 인체 소화 분야 최고 권위자인 스티븐 플랫 박사가 14가지 슈퍼 푸드 중 한 가지로 늙은 호박을 꼽은 걸 보면 호박은 동서를 망라하여 좋은 식품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가을걷이가 다 끝날 무렵까지 오롯이 초가지붕을 지키며 홀로 늙어 살을 채운 늙은 호박 한 덩이는 긴 겨울 식구들의 달달한 간식으로 최고였다.

시골집 툇마루 끝에서 천덕꾸러기로 차례를 기다리던 그 못생긴 호박은 우리 가족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건강식이었다.

호박은 꼭지부터 씨까지 버릴 게 없는 완전 식품이다.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할지언정 호박만큼 인간친화적인 건강식품도 드물다.

이런 호박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은 그의 고마움에 대한 배은망덕이다.

‘호박이 넝쿨 채 굴러 들어온다’라는 말이 있다.

한마디 덧붙여 호박을 먹으면 건강이 넝쿨 채 굴러 들어온다.

뒤에서 깐다고 힐난을 받았던 호박씨! 알고 보면 건강한 지방산의 보고寶庫다.

호박씨는 까면 깔수록 건강해진다.

이제 당당하게 내놓고 호박씨를 까자.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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