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창고로 사용해오던 건물을 카페로 인테리어 설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본다.

건축에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오래된 화두가 있다.

루이스 설리번이라는 근대건축의 첫 장을 장식한 건축가의 말이다.

이 말은 모든 형태는 특정한 기능을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면 이 말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알 수 있다.

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따 먹기 위함이고, 가자미의 눈이 한쪽 면에 두 개 붙은 것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바닥에 붙어살다 보니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된 것이다.

자연의 디자인은 이렇듯 필연적 이유에서 발생한 결과다.

이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때 아주 유용한 철학이다.

자동차를 처음 디자인한 사람은 기능적 이유에서 엔진과 네 개의 바퀴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비행기의 날개와 프로펠러도 기능적 이유에서 생겼다.

처음 만들어지는 것의 디자인은 이처럼 ‘기능’에 근거한다.

하지만 건축물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첨가되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가 항상 성립되지는 않는다.

런던의 화력발전소로 사용되다 더 이상 쓸모 없어져 문을 닫은 건물이 시간이 지나 ‘테이트 모던’이라는 미술관이 되었다.

최초의 테이트 모던은 화력발전소의 형태에 맞게 디자인되었지만 커다란 증기터빈이 있던 자리는 이제 미술관의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도 좋은 예다.

원래 기차역으로 사용되던 이 공간은 기차 엔진이 강력해지면서 길어진 객차를 수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기존 플랫폼이 짧아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게 된 것이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곳은 사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다가 수십 년 후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최초에 건축물을 계획했던 목적과 달리 시대가 변하면서 건축물이 필요 없어질 때가 생기는데, 그때 건축물이 그대로 있으면 철거되고 소멸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 그 건축물은 그 시대의 필요에 맞게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한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말이다.

테이트 모던과 오르세 미술관 모두 주어진 건물 형태에 맞추어 새로운 기능을 덧입은 경우다.

물리적으로 보면 건축물은 돌, 벽돌, 유리 같은 재료로 만든 무생물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건축물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그 무기질 재료 부분이 아닌 그 부분을 제외한 ‘빈 공간’이다.

빈 공간을 싸고 있는 재료들이 좀 변형되어도 그 안의 빈 공간을 사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물은 다른 물건과는 다르게 사람보다 오랫동안 살아남고 시대에 따라 다른 용도로 변형되면서 다시 사용된다.

건축물 자체를 재사용하는 업사이클링 건축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살아남기 위해 ‘빈 공간’이 진화하는 이야기다.

/(주) 라인종합건축사 사무소 김남중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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