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4대 향교를 따라 사색을 즐기다
익산 4대 향교를 따라 사색을 즐기다
  • 문성용
  • 승인 2018.11.2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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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鄕校)’.

말 그대로 시골의 학교라는 뜻으로, 옛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중등 교육기관으로써 지방관 책임 하에 설치 운영되었던 공립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향교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과거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를 그 기점으로 보고 있다.

고려 무신정권의 몰락 이후 신진사대부들이 고려의 권력을 잡으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 지도 이념으로 채택된 유교와 성리학을 백성들에게 보급시키기 위해 ‘1읍 1교’ 원칙에 따라 전국 모든 군현에 향교를 건립하게 됐다.

향교에는 교관이라는 중앙 관료가 파견됐으며, 교육 기능뿐만 아닌 일반 백성들에게 미풍약속을 고취시키는 등 사회교화 기능도 갖고 있었다.

현재 익산에는 익산향교, 여산향교, 용안향교, 함열향교 등 4개 향교가 남아있다.

깊어가는 가을 우리 선조들의 옛 발자취를 느껴보기 위해 익산 4대 향교를 찾아가 보았다.
 

▲익산향교  

태조때 창건돼 임진왜란때 소실
인조 6년 증건 공덕비 17기 자리
동재 양반-서재 서민자제 기숙


익산향교는 금마면 금마산 아래 교동마을에 위치해 있다.

기록에 따르면 태조 7년(1398)에 창건된 익산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6년(1628)에 중건했다고 한다.

향교 정문 옆에는 과거 익산 지역 관리들의 공덕비, 선정비등 비석 17기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향교를 지키기 위해 도열한 병사들의 모습 같다.

익산향교는 평소에 개방돼 있지 않다.

익산시 문화관광과에 문의를 통해 현 관리자인 전교를 만나 함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다른 향교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선현에 제사지내는 배향 공간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향교 내로 들어서면 교육 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동재, 서재가 있다.

명륜당 동편과 서편에 위치한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시설로, 동재에는 양반들의 자제가, 서재에는 서민들의 자제들이 기숙을 하며 학문을 수양했다.

향교 뜰에는 유교 교육을 상징하는 의미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다.

수명은 60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며, 익산 향교와 함께 그 긴 세월 자리를 지켜왔다.

담 하나를 더 두고 배향공간으로 넘어가면 대성전과 마당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을 배향하고 있다.

위치: 금마면 고도7길 11-4  

▲여산향교  

건립연대 불명 조선 태종때 옮겨와
대성전 특징 3칸집에 계단 한개 뿐

익산시 여산면에 자리잡고 있는 여산향교의 처음 건립연대는 현재 알 수 없지만, 조선 태종 3년(1403) 여량현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인 면에서는 다른 향교들과 비슷하나 조용하고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그런지 더욱 적막한 느낌이 든다.

외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왼쪽에 커다란 은행나무와 함께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는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을 한바퀴 돌아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전방과 좌우에 대성전과 동재·서재가 균형에 맞춰 위치해 있다.

대성전은 정면3칸 반에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처마에는 부연을 단 겹처마로 되어 있다.

보통의 향교가 3칸의 집이며 각각의 칸에 계단을 가진 것에 비해 이곳 대성전의 계단은 하나뿐인 것이 특징이다.

계단을 따라 대성전으로 올라가 돌아보면 좌우의 동·서재와 명륜당, 바깥담까지 향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향교들과 다르게 여산향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에 대성전 앞에 앉아 잠시 사색을 즐겨본다.

위치: 여산면 여산교동길 23-2  

▲함열향교  

임진왜란때 전소돼 영조때 다시 지어
남궁경 영소전에 공자 영정 봉안

익산시 함열읍에 있을 것 같은 함열향교는 사실 함라면에 자리잡고 있다.

함라산을 등지고 1천 300평 넓은 부지에 동남쪽으로 위치하고 있지만,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영조 때에 다시 지었다가 순조 31년(1831) 현재 위치로 다시 옮겨왔다고 한다.

내삼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니 다른 향교들보다 좀더 큰 규모이다.

정면에 명륜당과 오른편에는 4칸의 동재, 왼편에는 3칸의 서재가 있으며, 3개의 건물이 가깝게 배치돼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앞면 3칸에 맞춰 계단 3개가 배치돼 있다.

함열 향교 특징으로는 영소전을 들 수가 있다.

인조 4년(1626)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남궁경이 귀국하면서 가져온 공자 영정을 숙종 43년(1717)함열 향교 경내에 영소전을 세워 봉안했다.

현재 공자의 영정은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위치: 함라면 함라교동길 27-4  

▲용안향교  

고려 공양왕때 건립 주민 성금으로
전소된 건물 지어 현재 구조 이뤄
동네 어르신 사랑방 역할 톡톡

익산시 용안면에 자리잡고 있는 용안향교는 고려 공양왕 3년(1391) 처음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무2년(1897) 다시 중건됐다.

1927년 화재로 대성전만 남고 모든 건물이 없어지고, 대성전터 앞을 용안초등학교에 내어 주었다.

대성전만 남아있던 용안향교에 지방민들이 성금을 모아 1961년 명륜당을 지었으며, 1982년에는 마을 회의를 열 수 있는 충효관을 건립했다.

그리고 1997년 전사재를 복원, 현재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다른 향교와 다르게 용안 향교는 항상 문을 열어두고 수시로 출입하는 여유를 준다.

다른 향교들의 구조와는 다르게 마당의 폭이 상당히 좁고 명륜당 등 건물들의 위치가 옆으로 나란히 지어져 있는 모습이다.

처음에 충효관이 위치하고 그 옆에 나란히 내삼문과 정면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전 내부로 들어가니 공자 초상화와 중국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정성스레 자리 잡고 있으며, 한쪽에는 제기 일체와 제복 등이 남아있다.

대성전을 나오면 옆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명륜당이 있다.

용안향교 곳곳에는 좁은 공간에 소박하게 꾸며놓은 정원이 눈길을 끈다.

끝에 위치한 전사재에서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현재는 용안향교 사무실이자 동네 어르신들의 모임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멋스러운 기와들과 소박한 듯 꾸며진 정원에는 늦가을 화창한 햇빛의 따사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위치: 용안면 용안교동1길 34-11

/익산=문성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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