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 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고 난 후 이 글을 계속 중얼거렸다.

오래 익을수록 맛있는 인생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다자연을 벗 삼아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주인공의 나이테는 90+87= 177이다.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슈이치와 어떤 요리도 척척 만들어내는 87세 할머니 이바타 히데코다.

1970년 고조기 뉴타운 지역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300평의 땅을 매입해서 집을 짓는다.

작은 숲을 가꾸며 50년을 살아온 집에서 50종의 과일과 70종의 채소를 키우며 살아간다.

새들을 위한 옹달샘도 만들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숲을 가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남은 할머니 히데코의 일상은 쓸쓸해진다.

그러나 이내 주어진 혼자의 생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한다.

수확한 작물들을 박스에 공평하게 나눠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소소한 일상은 계속된다.

“인생 후르츠“ 영화에서 참으로 인상적인 것은 히데코 할머니의 밥상이다.

식탁에서 부부는 철저하게 다름을 인정한다.

자신은 감자를 먹지 않지만 늘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감자 요리를 만든다.

감자 크로켓. 샐러드. 스튜. 카레를 만든다.

할머니는 잘 구운 토스트에 쨈을 발라 식사를 한다.

그러나 슈이치 할아버지는 밥과 국에 정갈한 아침상을 늘 따로 차린다.

완전 서로 다른 취향이 한 테이블에 놓여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점을 조화롭게 맞추고 산다는 것임을 보여준다.

어느 한쪽에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노부부의 모습은 신선함 그대로였다.

조화롭다는 것은 어느 한쪽의 포기가 아니라 인정이다.

또 배려임을 이 노부부는 밥상에서 말하고 있다.

또 하나 이 영화에 반짝임은 바로 히데코 할머니의 흰색 식탁보다.

할머니는 꽃 자수가 놓인 식탁보를 새롭게 깔고 항상 식사를 준비한다.

그 순 백색 식탁보에서 두 사람의 식사는 흰 눈처럼 포근하다.

서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하얀 눈 위에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사실 그 하얀 식탁보는 식사의 대한 경건함이 들어있다.

먹는다는 일은 그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과, 음식을 공유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인생 후르츠”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속에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꽤나 괜찮은 길이 있음을 넌지시 귀 뜸 해준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노래한다.

아울러 먹는다는 것에 의미는 결국 사랑임을 보여준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일은 곧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결국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일은 삶을 같이 한다는 것.

매일 밥상을 차리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근본이 아닐까 늘 밥상을 차리는 일이 그저 그런 일이 아님을 잘 안다.

그래도 새해에는 더 따뜻한 밥상을 차려야겠다.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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