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의 별미 배추전
소·확·행의 별미 배추전
  • 서향숙
  • 승인 2019.01.15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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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번듯한 프라이팬이 없던 내 어릴 적에는 전을 부치는데 무쇠솥뚜껑만한게 없었다.

솥 뚜껑을 뒤집어 놓은 넓적한 무쇠 판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오면 어김없이 올망졸망 아이들이 모여든다.

김장이 끝나고 겨울이 깊어지면 으레 솥뚜껑 프라이팬에 올려지는 단골은 단연 배추전이였다.

내 얼굴만한 배추 한 잎을 걸쭉하게 반죽한 밀가루에 듬뿍 발라 솥 판에 올린다.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 하게 구워지는 배추전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이미 행복해졌다.

솥뚜껑은 하도 넓어 넓적한 배추전 대여섯 장은 동시상영하기에 충분하다.

하기야 한꺼번에 대여섯 장을 부쳐내야 대여섯이나 되는 형제들에게 동시에 균등 분배가 가능했다.

접시나 젓가락 같은 번거로운 사치(?)가 아니더라도 그냥 배추전 한 장 손바닥에 올려놓고 손으로 쭉쭉 찢어 먹는 게 제 맛이었다.

지금도 가끔 배추전을 부쳐먹을 때 옛날 생각에 손으로 찢어 먹곤 한다.

물론 아이들은 ‘위생’과 ‘품위’ 운운하며 눈총을 준다.

하지만 배추전은 그렇게 위생적으로 점잔을 떨며 먹으면 제 맛이 아니다.

배춧잎 한 장이야 시골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하찮은 재료였지만 한겨울 무쇠솥에서 구워 나오는 배추전은 그야말로 재 탄생된 먹거리의 일품이었다.

배추는 95% 정도가 수분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배추를 그냥 물로 보면 안 된다.

중국에서는 백 가지 여채가 배추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히 여기는 채소다.

<동의보감>에서는 배추를 이렇게 서명하고 있다.

"배추는 성질이 평(平)하고 서늘하다[凉].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음식을 소화시키고 기를 내리며 장위를 잘 통하게 한다.

또한 가슴 속에 있는 열기를 없애고 술 마신 뒤에 생긴 갈증과 소갈증을 멎게 한다.

채소 가운데서 배추를 제일 많이 먹는다.

많이 먹으면 냉병(冷病)이 생기는데 그것은 생강으로 풀어야 한다” 또한 배추는 해독 기능이 강화돼 간암을 억제 해준다.

비타민C의 공급원이며 소화를 도우며 내장의 열을 식게 하는 작용을 하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특히 배추는 변비에 좋다.

배추는 그냥 김장배추와 양배추 정도의 종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종류 또한 여느 채소 못지않게 다양하다.

한국배추, 산동배추, 반결구산동배추, 직예배추, 죽순배추 , 지부배추, 가하배추, 포두련배추, 애지배추 , 권심배추 ,가락신1호배추, 가을황배추 , 장미배추,그러나 배추전을 부쳐먹는 데는 그런 거창한 한방 지식이나 품종 등을 알지 못해도 된다.

그냥 소박한 마음이면 된다.

주렁주렁 아이들이 많았던 우리 집에서 배추전을 부칠 때마다 엄마의 첫 배추전 작품은 항상 아버지 몫이었다.

젓가락에 둘둘 말아 아버지의 입 속으로 쏙 들어 간 배추전은 아버지의 술안주로 그만이었다.

배추전을 부치는 날에는 세상의 모든 평화가 우리 집으로 모였다.

배추전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 걸치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서 파란 배추 같은 지폐가 인심 좋게 나오는 날이었다.

엄마의 잔소리도 배추전에서 배어 나오는 구수함으로 들렸다.

널따란 솥뚜껑 안에는 배춧잎만큼 넓고 넉넉해진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우리는 배추전 한 장으로도 충분히 한솥밥 식구였다.

소.확.행이 별건가.

당장 배추전 한 장 부쳐 먹어보면 알걸.

배춧잎 한 장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어느 맛이 이보다 더 구수할 수 있을까?

/서향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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