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지키고 행할 덕을 나타낼 말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말했다."바로 서(恕)라는 말이다,자신이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사람을 평할 때는 실증을 가지고 사람을 평한다.

내가 남들에 대해서 누구를 허물하고 누구를 칭찬하랴?만약 칭찬한 사람이 있다면 그럴 만한 실증이 있다.

오늘의 이 백성들도 하은주(夏殷周)3대 때에도를 따라 곧게 살던 사람들과 같다.

옛날의 사관은 확실한 것만 기술했다.

요즘 말로는 한 걸음 양보하여 대화로 풀수 있는, 마찰된 사안들도 흔히 있을수 있다,세상 살이는 혼자서 살 수 없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기 때문에 마찰도 있고 소소한 실수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자기 고집만 주장하다 보면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자기 욕심대로만 산다면 얼마 안 가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일보 양보가 중요한 윤활유가 될 것이다,한발 물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해 준다면 삐걱 거리는 일이 훨씬 감소 될 것이다.

흔히 고소 고발하여 어느 일방이 패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반대편이 꼭 기쁠 일만 아니다.

어떻게 보면 덕성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고소 고발을 자제하고 남에게 은택을 베푸는 덕행을 베 풀면 그 사람이 별세 후라도 그 은택은 후세에 전해지고 그 집안의 경사로 전해지게 된다.

그래서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는 명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저명 교육자 한 분이 있다,그 분을 소개해 볼까한다.

1991.10월 제3회 서울 시민대상,2005.11월 아산재단 봉사 대상을 수상한 초등 교육계의 명망가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정용성 교장은 1952.4월 전남 군남 초등학교에 초임 부임한 이래 인간애를 쏟아 불우 학생을 사비로 줄곧 도와 왔기에 한국이 낳은 현대판 상록수 스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용성 교장이 과거 국내 전 장차관및 시도지사에게 뼈를 깍는 아픔을 딛고 성취한 실행적 체험 중심의 강의는, 강의를 듣는 모든 장차관급의 가슴을 요동치고 울먹이게 했다.

정용선 교장의 부친은 시골에서 대농 이었는데 춘궁기에 방아를 찧으면 같은 동리의 가난한 주민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 덕행이 있었다는,사실을 필자가 전해듣고「적선지가에 필요여경」이라는 명구가 허언이 아니라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이게 된다.

/강병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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