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E.H 카아가 설파하듯 “과거가 죽은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라며 “그런 연유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 서문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마다 역사를 지우거나 바꾸기에 바빴다.

특히 근대사는 정권의 입맛대로 재해석되고 수용됨으로써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영화 ‘항거 유관순의 이야기’는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면의 역사를 제법 자세하게 담고 있다.

어려서부터 만인의 누나였던 유관순 은 아우네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유관순의 형무소 생활을 생생하게 증언해 냄으로써 그녀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3.1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고향 충청도 병천에서 ‘아우네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후 1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은 독립만세 운동계획을 전해 듣고 여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고, 3월 13일에는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고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마침내 4월 1일 아우네 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때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하여 열아홉 명이 현장에서 사살됐지만, 부모의 시신을 수습할 시간도 없이 그만 주모자로 체포된다.

일본경찰은 미성년자임을 감안해 범죄를 시인하고 협조하면 선처를 약속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나는 한국인이다. 너희들 일본은 우리 땅에 몰려와 숱한 동포를 죽이더니 마침내는 나의 부모까지 죽였다. 대체 누가 누굴 죄인으로 몰아 심판한단 말인가?”

법원은 그녀에게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유관순은 불복했지만,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됐고 3년 징역형이 확정됐다.

비록 그의 몸은 서대문형무소 8호실에 갇혔지만, 그녀의 생각과 행동은 독립에의 열망으로 가득 찼다.

8호실 감방의 여자들은 모두 만세운동을 하다가 잡혀온 사람들이었다.

아우네 장터에서 자식을 잃어버린 아주머니, 다방 아가씨, 심지어는 기생들까지 있었다.

비좁고 음울한 형무소에서 ‘아리랑’을 구슬프게 연창하다가 교도관들이 다가오면 뚝 그쳐야 하는 자신들의 신세가 ‘개구리’ 같다고 생각했다.

유관순은 걸핏하면 교도관들에게 끌려가서 온갖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조선인 정춘영의 변신은 놀랍다.

그는 암흑의 시기에 친일파가 돼야만 사는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유관순을 다루는 방식은 일본인보다도 더 치밀하고 난폭했다.

‘니시다’로 개명한 그는 진짜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웠다.

3.1 만세운동 1주년이 다가오자 그녀는 또 다른 계획을 한다.

정확하게 1920년 3월 1일 오후 두 시 ‘옥중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친다.

8호실 감방에서 울려 나온 만세 소리는 형무소 안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심지어는 서대문 형무소 인근 시민들에게까지 힘차게 울려 퍼졌다.

3.1만세운동은 인류사에 보기 드문 사건이다.

당시 이천만 민족의 10%에 해당하는 202만이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을 했다.

이중 7,500명이 살해되고 1만 6,000명이 부상당했으며, 체포 구금된 사람도 4만 6,000에 이른다.

이 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바로 그해 4월 11일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으며 세계사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5.4운동, 인도와 필리핀, 이집트의 독립운동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일제에게 유관순은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저항의 DNA를 지녔다 해 아기도 낳게 해서는 안 된다며 그녀의 골반을 짓이겨버렸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만행 앞에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왕세자의 결혼으로 형기가 줄었지만 그녀는 풀려나지 못했다.

오빠와 친구가 면회에 와서 바짝 야윈 그녀를 보고 “제발 살아서만 나와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대한독립만세‘를 한 번만 더 외치고 싶다고만 한다.

그녀는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1920년  9월 28일 옥중에서 사망한다.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일제는 그의 뼈마저 찾지 못하도록 그 위에 건물을 지어버렸다.

 조민호 감독의 소망처럼 이 영화를 통해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모습과 용기를 통해 잃어버렸던 당당한 눈빛과 희망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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