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막말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막말이 난무하는 시대는 일찍이 경험하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의 욕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기성세대의 막말 논쟁도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의 정치권은 막말의 고수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막말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개방화되었다는 것일까.

예전 같았으면 따끔한 회초리를 맞아야 할 아이들이 너무 많고, 의회에서 제명당해야 할 선량들도 너무 많다.

혐오와 분노를 담은 거친 막말들이 여과되지 않은 채 마구 쏟아져 나온다.

어린 아이들이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는데, 제법 잘 배우고 또 남보다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백주 대낮에 그런 말들을 버젓이 쓰고 있다.

그렇다고 막말을 쓰는 사람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이 당장 펼쳐지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거친 막말을 쓸까.

일차적으로는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일 테고, 다음으로는 세를 결집하고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방안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 보듯 계속된 막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분쟁만 야기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들고, 사람들의 정서를 메마르게 할 뿐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이면서 감정표출의 도구이다.

그런 만큼 말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위로와 연민을 줄 때 그 가치가 있다.

말로 상처를 건드리고 분노와 혐오를 자극하는 것은 말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그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정적 영향을 양산하게 된다.

우리는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 이사를 세 번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우수한 교육환경을 찾아 나선 일이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좋은 말과 관련이 있다.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말을 쓰게 하고 싶어서 환경을 바꿔 준 것이다.

걸쭉한 욕설이 난무하는 시장을 피했던 것도, 곡성과 한숨이 가득했던 공동묘지를 피한 것도 결국은 품위 있고 교양 있는 말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막말에 관한 뉴스가 매일 한 건 이상씩 나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이 사회가 매우 비정상이라는 지표이다.

극단의 대립과 분열, 이 정치판에서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말밖에 없다는 듯이 싸운다.

왜 그들은 그런 막말을 쓸까? 그들에게는 막말이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서는 모양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세(勢) 결집을 위한 유용한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말 한 마디 잘못하여 속된 말로 ‘훅-’ 갔던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는가.

막말이 정치의 유효한 수단일 리 없으며, 결코 유효한 수단이어서도 안 된다.

말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것으로 사용될 때 그 가치가 높다.

최근의 정치판처럼 말꼬리 이어가면서 연일 막말을 쏟아놓은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막말의 당사자로서도 그렇지만,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치권은 설전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 안는 말을 사용했으면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새해가 되면서 필자는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그 해에 시 100편을 외워 보자는 것이었다.

결심을 하고 난 후, 필자는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주로 아침과 저녁 산책 시간에 시를 외웠는데, 늘 좋은 시들을 대하다 보니 내 생각과 행동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만났을 때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기왕이면 희망과 용기를 주는 좋은 표현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좋은 시를 암송하고 왔으니 그 느낌과 기분이 나의 일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따뜻한 이해를 우선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그 효과는 아주 좋았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한다고 크게 말했던 내 목소리는 톤이 낮아지면서 부드러워졌다.

이런 시와의 만남은 필자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고 결함이 많은 인간이지만, 조금은 시의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게 됐다.

이 땅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이여, 시를 읽기 바란다.

/송산 송일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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