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의 덕목 중에 효율성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이든 딱 필요한 만큼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넓고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용도에 맞게 적절한 크기로 만들어진 것들이 주는 기본적인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대한 스케일이 주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경외심이나 서로 다른 크기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의외성이 건축적인 연출 기법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복도, 계단, 문과같이 일상적인 생활을 지배하는 건축 요소들은 이러한 효율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효율성을 벗어난 것들을 보면 건축가들은 모종의 거부감을 느낀다.

일례로 구조부재의 크기에 대해서는 강박증 비슷한 것이 있어서, 기둥이나 보, 슬래브의 치수를 가지고 구조기술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은 실시설계 단계의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다.

현장에서 철근을 빼먹지 않고 시공한다는 전제하에, 설계하중에 딱 맞추어 최소의 안전율만이 곱해져서 만들어진 구조 부재는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함께 전달한다.

설계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느낌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리라.

비단 구조 부재뿐만 아니라, 복도와 문의 폭, 계단의 높이와 단면의 길이 등 기본적인 건축의 틀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치수는 건축가가 예민하게 다루는 숫자들이다.

건물의 용도와 기능에 따라 몇 십 밀리미터의 차이를 결정하기 위해 도면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려보는 것이다.

평면도나 단면도를 보았을 때 축척을 보지 않아도 공간감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스케일감을 학생 시절부터 익혀왔기 때문이다.

작년에 장애인, 노인, 임산부를 위한 편의증진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었는데, 건축가들이 지금까지 대체로 동의하면서 써왔던 익숙한 치수들에 큰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문 유효 폭이 800에서 900 밀리미터로, 여닫이 문 옆 여유 공간이 450에서 600 밀리미터로, 장애인 경사로 경사도가 1/12에서 1/18로 대폭 강화된 것이다.

물론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넓어진 만큼, 완만해진 만큼 사용과 이동에 있어서 더 수월해진 것은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설계의 덕목 중 하나인 효율성이 법에 의해 금지 당한 것에 다름 아니다.

위 항목이 해당되는 용도의 건축물 한정이기는 하지만(기본적으로 모든 공공건축물이 포함된다.) 이제는 더 이상 딱 맞는 것들이 주는 쾌감을, 적어도 문을 드나들면서, 경사로를 오르내리면서 느끼기 어렵게 되었다.

유효폭 800이었을 때는 휠체어 통과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평면에 프레임 포함 1100짜리 문을 그리고 나서 마치 건축물 전체가 작아져 버린 느낌에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장앤학교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거리의 보행환경 또한 장애인에게는 지나치게 적대적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이 가장 무섭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건축법에만 들어오면 장애인을 위한 배려와 과잉 상태가 된다.

BF(Barrier Free, 무장애 공간) 인증을 받기 위해서 설계사무소에서 날밤을 새면 고생하고 사용승인을 받기 위해 이미 시공한 문이나 난간을 몇 번씩 뜯어고치는 것은 이미 건축계에서는 흔한 일이 되었다.

자본의 투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강한 권력이 행사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쪽으로 과하게 분출되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그리고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효율성의 미덕을 완전히 놓지 않은 수준에서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줄이는 더 나은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라인 종합 건축사 사무소 김남중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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