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이후 건축은 우리를 만든다.

1943년 10월, 영국 윈스턴처칠은 폭격으로 폐허된 영국의회 의사당을 다시 지을 것을 약속하면서 행한 연설 내용중의 한 구절이다.

그렇다.

건축설계 전문가인 건축가는 오너의 주문에 맞추어 건축물을 창조하고 완성하지만 그 건축물을 이용하고 거주하는 사람은 완성된 건물 환경에 의해 지배 받게 된다.

싫든 좋든 일단 완성된 건물 속에서 평생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쾌적하고 좋은 환경은 집주인 뿐만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이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은 우리의 생활과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198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단순히 기능 위주의 건물이 지어 졌었다.

특정 건물 외에는 삶의 멋이나 조화로운 환경 따위는 관심이 없었고, 일터와 거주에 편리한 건물만으로도 족했다.

얼마 전 제72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황금 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이 영화 속의 저변에 깔린 우리사회의 양극 구조가 필자에게는 씁쓸함을 보여주었던 영화였다.

좀 부유한 가정(박사장)의 집으로 들어온 기태네 가족(배우 송강호)과 전 가정부 가족이 축제의 장소가 되어야 할 생일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백수나 다름없는 기우, 기정이가 박사장 딸과 아들의 가정교사로 들어오며, 기태(송강호)가 운전기사로 들어오면서 박사장 가족이 캠핑여행을 떠난 후 집안에서 펼쳐지는 광란의 파티와 지하실의 닫혀진 삶은, 지금의 물질이 풍족한 환경에서 볼 때 기태 일가의 기생충 같은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 영화였다.

이 영화의 내용은 최근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모습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어느 개인이든 마땅히 국가로부터 법으로부터 보호받고 지켜져야 하는 존재임에도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비록 많은 경험이 없는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도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그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맞추어 살라고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주어진 공간 속에서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하는 인생, 그 환경 속에서 자신의 평생 삶을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예전에는 건축물이 아닌 건물이었다.

건축물은 그 속에 철학과 이념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자연 기후에 자신을 보호하고 의식주 행위의 용도밖에 쓸 수 없다면 그것은 건축물이 아닌 건물인 것이다.

마치 층층이 쌓여진 닭장처럼 지어진 아파트 공간은 구획된 구조체 속에서 내 삶을 맡기며 살아야 한다.

1920년대 이후 10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은 세계곳곳에 유명 건축가들이 침체된 도시를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라별로 또는 각 도시 지자체별로 설계 공모전을 통하여 40년 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개성적이며 기념비적인 건물들을 창출하고 있다.

유명 건축가는 아니더라도 경험 많은 건축가 그룹들에 의해 현상설계를 통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침체된 환경에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지역 역사성과 지역성을 되살려 도심 환경을 재생한다거나 복원하여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역할과 구실을 하고 있다.

요른 웃존이 설계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오스트리아 대륙 전체의 건축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건축물이 사람들에게 인기 높은 취미거리가 되고 건축가가 일종의 지역을 회생시키는 구세주가 된것은 프랭크 게리가 빌바오시에 은백색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선보인 때부터 였다.

그때 빌바오는 시의 모든 것이 침침하고 황폐했으며 철강업과 조선업의 내리막길에 있었고 공장이 문을 닫아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어가는 때였다.

하지만 빌바오 시당국은 몰락한 중공업의 자리에 문화산업이 계승되도록 하자는 결론이 내려졌고, 그곳에 프랭크게리의 미술관 건물이 생기면서 침체된 도시가 새로운 변화의 상징,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이 된 것이다.

이처럼 멋진 건물은 그 도시를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한다.

건축가는 조형 창작하는 예술인으로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건축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 국민의 쾌적한 생활공간과 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건축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그 사명을 다 해야 한다.

비록 방탄소년단 같은 공항대합실에서 아우성치는 극성팬들을 불러일으킬 만큼 스타건축가가 없더라도, 건축가가 설계하는 건축은 생명이 없는 건물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나름의 철학이 스며든 건축물이 되어야 하겠다.

/신세대건축 추원호 건축사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