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식품명인 80호
마을소득원 고민끝에 시작
전통 쌀엿 재현-체계화
마을 고령화 7가구만남아
명맥 유지 위해 명인 도전
모든 과정 수작업 힘들어
배우려는 젊은 사람 없어
일부과정 기계화 계획 중
옛맛-전통 지키고픈 열정

대한민국 식(食)문화의 근간을 지키고 있는 식품명인대한민국 식(食)문화의 근간을 지키고 있는 식품명인.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인고의 시간과 정성을 더 해 전통의 맛을 지켜온 이들만이 거머쥘 수 있는 타이틀이다.

그렇다고 시간만이 능사는 아니다.

전통식품에 배어 있는 가치와 명인으로서의 자질을 골고루 갖춰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지난 1994년 대한민국 식품 1호로 송화백일주 조영귀 명인이 이름을 올린 뒤 총 84명의 명인이 지정, 이 중 전북에는 12명이 지정됐으며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맛의 고장답게 전북만의 토속음식이 많은 만큼 다양한 분야의 식품명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이 있기에 전북의 식문화가 지켜지고 있으며 맛의 고장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것이기도 하다.

해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도내 명인 10명 중 지난해 쌀엿으로 명인 80호에 이름을 올린 임실군 ‘박사골 옛날 쌀엿’ 원이숙 명인을 만나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향후 명인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전통의 맛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30년간 한눈팔지 않고 오롯이 ‘쌀엿’을 만들다 보니 명인이 된 것 같아요.

이제는 명인이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갖고 전통 쌀엿의 맛과 가치를 후손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싶습니다.

” 임실군 삼계면은 ‘박사골’로 불리는 인재의 고장이다.하지만 박사골이 전국구로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바로 ‘쌀엿’이다.

쌀엿은 명절이나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친지, 이웃과 주고받았던 이 지역의 미풍양속에 비롯됐다지만 명품 엿으로, 지역 특산품의 반열에 오른 것은 한 사람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바로 지난해 대한민국 식품명인 80호로 도내에서 12번째 명인으로 지정된 ‘박사골 옛날 쌀엿’ 원이숙 대표다.

원 명인은 “1980년대 후반에 마을 부녀회장과 생활개선 면단위 회장을 맡으면서 조금이라도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다”며 “어려운 시절이었고 소득원이 없었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고민을 하다가 옆 마을에서 엿을 만드는 것을 보고 이것을 발전시켜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하게 됐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부터 친할머니가 농한기나 집안 행사 때마다 마을 부녀자들과 함께 엿을 만드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랐고, 원 명인의 어머니 역시 솜씨가 좋았던 만큼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팔 수 있는 엿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맛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려고 했던 만큼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마을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어느 집이나 똑같은 맛과 품질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체계화하고 교육하는 일 또한 원 명인이 풀어야 할 숙제였던 만큼 여느 식품명인 보다 넘어야 할 산이 높았다.

 현대화와 인구감소로 빠르게 생기를 잃어가는 마을의 새로운 소득원을 찾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쌀엿은 원 명인의 이런 노력 덕분에 어느새 박사골의 특산품이자 임실군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마을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한때 70여 가구가 만들던 엿은 이제는 겨우 7가구만이 만들고 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원 명인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젊은 사람도 힘든데 나이 든 사람은 오죽하겠느냐”며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엿을 만드는 가구가 줄고, 남은 사람들도 소량만 하거나 그만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로 인해 전통 쌀엿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이는 그를 명인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에서 나선 이유였다.

맛과 전통문화를 보전해 가기 위한 것으로, 결국, 지난해 명인에 이름을 올렸다.

30여 년간 지역에서 생산되는 좋은 원료로 정직하게 전통방식을 고수한 그의 노력과 원칙이 ‘명인’이라는 타이틀로 인정받은 것이다.

원 명인과 비슷한 세월 동안 쌀엿을 만든 이들도 있지만 그가 처음 이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전통 쌀엿을 재현하고 체계화 한데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만큼 이는 당연한 결실이다.

  사실, 몇 해 전 주변에서 명인 추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명인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냐’고 관심도 두지 않았던 그였지만 박사골 쌀엿의 명맥이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명인이라는 책임감을 감당키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지만 원 명인은 “박사골 전통 쌀엿은 설탕이나 물엿, 감미료 등은 일체 넣지 않고 오롯이 질 좋은 쌀과 엿기름만으로 맛을 내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며 “무엇보다 엿의 맛은 어떤 엿기름을 사용했느냐에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엿기름을 직접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이를 배우려는 젊은 사람이 드물다”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그는 전통의 맛을 이어가기 위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전수자를 양성하고 쌀엿의 맛을 널리 알려 명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 과정을 기계화할 계획인 것이다.

원 명인은 “아무리 좋은 것도 이어갈 사람이 없으면 명맥이 끊기기 때문에 무조건 전통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대신, 옛 맛 그대로 유지함은 물론 지금까지도 지켜온 기본 재료에 대한 원칙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명인으로서 전통의 맛을 널리 알리는 것 또한 의무인 만큼 체험장 마련해 많은 이들에게 박사골 쌀엿의 맛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일흔이 된 지금도 쌀엿에 대한 열정만큼은 30여 년 전 마을을 위해 앞장섰을 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명인의 의무를 제대로 하고 싶은 사명감이기도 하다.

원 명인은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과 맛에 대한 원칙으로 엿을 만들어 왔듯이 앞으로도 이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엿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오랜 정성이 필요한 만큼 지금까지 엿을 만들면서 단 한 번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맛과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라고 명인이 된 만큼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어 자꾸 욕심이 난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이어 “명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도 갖춰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성아기자 tjd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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