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부터 종목-체육인-체육대회 등
기록··· 선진체육인-체육시설 등 역사도

전북체육은 초창기 전주와 군산 등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신흥학교, 전주고보, 고창고보, 군산중학, 이리농림 등의 학교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냈다.

신흥학교와 전주고보, 전주고보와 이리농림 등 학교간 축구, 야구, 정구 등의 경기가 열려 이들 학교간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경기력 향상에도 힘썼다.

이들 학교는 1930년대 축구, 야구, 농구, 씨름 등 당시 인기있는 종목의 전국대회에서 여러 차례 정상에 올랐다.

전북 체육이 이처럼 일찍부터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고창고보 교사 이병학, 신흥학교 교사 김영구 등 체육 선구자들의 가르침이 큰 역할을 했다.

근현대 전북체육의 역사와 함께 참가팀, 참가종목, 관련 인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전북체육사’가 발간됐다.

체육발전연구원 이인철 원장이 펴낸 이 책은 갑오경장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체육과 이후 현재까지 발전한 체육의 역사를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책은 총설에서 대한민국 체육 발전과정과 전북체육의 발전과정을 담아냈다.

이어 1920년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연대별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종목별 역사, 종목별 대회가 열렸던 시기, 장소, 참가팀 등을 기록했다.

앞서 상기한 데로 선진 체육인 편에는 이병학, 김영구, 채금석 등의 업적을 기록했다.

1925년 고창고보에 부임한 이병학은 축구, 육상, 덴마트 체조 등 선진스포츠를 전북에 보급한 인물로 1940년대 조선역도연맹 부회장을 역임하고 1945년 조선체육회 이사장, 조선올림픽 전문위원, 대한역도연맹, 대한핸드볼연맹, 대한체조연맹 등을 만들고 초대회장을 지냈다.

우리 고장 출신은 아니지만 1919년부터 신흥학교에 근무한 김영구는 농구, 축구, 야구, 체조 등을 소개하고 지도하면서 전북 체육의 뿌리를 다졌다.

군산 채금석은 경신중학을 거쳐 국내 축구사에 전통깊은 대회를 알려진 서울평양대항 축구전에서 축구 인생 절정기를 구사했다.

전북을 넘어 한국 축구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채금석은 1992년부터 후학들이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채금석의 호를 딴 금석배 축구전국대회를 만들어 현재까지 열리고 있다.

전국축구대회 중 사람 이름을 건 축구대회는 금석배가 유일하다.

체육시설 편에는 사정과 덕진운동장, 전북종합체육관의 조성과정 및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정편에는 전주의 천양정을 비롯해 진남푸와 내사정, 진북경, 군자정, 다가정, 읍양정, 육오정 그리고 1970년에 세워진 풍남정 등이 있었거나 현재 남아있다.

덕진운동장은 1929년 덕진지 주변에 처음 만들어졌으나 1949년 전북대로 그 부지가 넘겨지면서 중노송동에 공설운동장에 생겼다.

이후 1963년 제44회 전국체육대회를 전주에서 개최하면서 덕진동에 종합운동장이 만들어졌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노송동 공설운동장은 주택지로 조성됐다.

이인철 원장은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조명코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한 시대의 사명이다. 30년전 전북체육사를 발표한 후 그지없는 죄책감에 고민했다”며 “다소의 책임감과 체육사학자로서 자긍심 등 각성한 나머지 증보판을 발간하게 됐다. 아울러 계속해서 부족함에 대한 보충을 계속할 것이다”고 밝혔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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