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건립 구마모토류헤이 별장
한인 소작농 2만명 대형농장 주인
쌍천 이영춘박사 1935년부터 거주
보건소 운영기록-일상생활 전시돼
해방까지 헌신적 의료활동 업적기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근대유산이 남아있는 군산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호남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거주했던 곳으로 군산시 곳곳에는 일제의 흔적이 아픔으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남아있는 일제 잔재들도 쌀 수탈을 목적으로 한 금융기관과 적산가옥, 창고 등이 남아있는데 오늘은 일제  점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농장을 운영하던 구마모토 류헤이의 적산가옥이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쌍천 이영춘 박사님이 살았던 이영춘 가옥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영춘 가옥은 군산시 개정면 동개정길 7 군산 간호 대학교 뒤쪽에 있는 적산가옥으로 현재 이영춘 가옥으로 불리며 가옥 안에서는 쌍촌 이영춘 박사님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이영춘 가옥은 한때 구마모토 별장 또는 개정병원의 별관으로 불리던 곳으로 지금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이영춘 가옥은 1920년 처음 지어졌을 때 전북 최대의 농장주인 구마모토 류헤이의 별장으로 지어진 가옥이기에 조경에서부터 집의 모양까지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네요.

특히 외부는 유럽풍으로 지어졌으며 평면 구조는 중복 도형을 가진 일본식, 응접실은 서양식 방은 한식의 온돌방이 합쳐진 새로운 복합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자료라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문이 정문이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뒤쪽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가옥의 전면으로 아름다운 단풍나무와 함께 일본식 창호가 눈에 들어 들어옵니다.

구마모토 류헤이는 고리대금업 등으로 교묘하게 토지를 끌어모아 부를 축적했으며 한인 소작농만 2만 명에 달했을 정도로 큰 농장의 주인이었다고 합니다.

대정면은 구마모토의 대형 농장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군산 간호전문 대학교와 봉정요양병원이 있습니다.

가옥의 뒤쪽으로는 이영춘 가옥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입구가 있습니다.

군산시에서 나온 해설사가 항상 상주하고 있으니 이영춘 가옥에 가시면 꼭 해설 들어 보세요.

이영춘 가옥 관람시간은 10:00~18:00 (점심시간:12:00~13:00) 마감은 17:00분까지이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가옥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나라 의학박사 1호 이영춘 박사의 소개 글이 벽면 곳곳을 채우고 있습니다.

쌍천 이영춘 박사님께서는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나서 세브란스의전 (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을 졸업하시고 병리학 강사로 계시다가 35세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구마모토 농장에 오셨다고 합니다.

첫 번째 전시는 이영춘 박사 하면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농촌위생연구소에 대한 설명과 군산간호전문 대학교의 전신인 고등위생기술원양성소, 직접 운영하신 보건소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영춘 박사가 이곳에 살면서 온돌방으로 바꾼 안방에는 이영춘 박사님의 삶과 일상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처” “예방의학의 선구자” “공중보건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는 쌍천 이영춘 박사님은 구마모토 농장에서 공중 보건활동을 하시며 해방이 될 때까지 20여만 명 하루에 10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할 정도로 헌신적 의료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농장을 가지고 있던 구마모토는 이 별장을 지을 때 조선 총독부 관저와 맞먹는 규모의 건축비를 썼을 정도로 최고의 자재만 골라 썼다고 하네요.

기록을 보면 건물의 외장재는 백두산에서 가져다 썼으며 지붕에는 청석돌 판을 사용하였고 거실 바닦제는 티크목을 사용했을 정도로 많은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특히 거실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샹들리에와 고종황제 일가가 사용한 의자와 침대, 벽난로 등도 있습니다.

구마모토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명실상부한 최대 농장주입니다.

군산에서 농장 개척의 가능성을 보고 일본의 한 신문에다 장밋빛 미래를 그린 기고문을 실었는데. 이 글을 본 독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군산의 땅을 사들여 농장을 세우고 확장을 거듭했으며 최신 농법을 도입하고 소작료를 올려 가면서 닥치는 대로 군산의 땅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군산 일대에 그가 가진 땅만 자그마치 1000만 평이나 됐다고 하는데 서울 여의도의 13배가 넘는 규모였으며 그의 땅을 부쳐 먹는 소작인들만 3000가구 2만여 명에 달했을 정도라고 하니 농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되죠.

일본식 건축 양식인 복도와 창입니다.

이영춘 박사는 1935년부터 이 집에 살면서 온돌방과 입식 부엌 외에는 따로 고친 곳이 없이 지금까지 엣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작농들을 착취해서 돈을 벌어들였던 구마모토의 별장이었지만 한국 농촌 의료봉사의 선구자였던 이영춘 박사가 살았던 집이기에 더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집 주변에 군산에서는 흔치 않은 아기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은목서, 영산홍을 심으셨고 집 뒤로는 모과나무를 심으셨으며 병원 주변의 조경도 일일이 챙기셨다고 합니다.

박사님은 은퇴 후 이 집에서 정원을 가꾸면서 사시다가 1980년 지병인 천식으로 돌아가셨으며 정부는 그동안의 공적을 높이 사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집 앞 개정 요양병원 앞에는 쌍천 이영춘 박사님의 흉상과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이영춘 박사는 일제강점기 농장의 한인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해 광복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핵, 매독, 기생충 퇴치에 평생을 바치셨으며, 일심 영아원, 일맥 영아원을 설립해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등 의료사회사업이 뭔지 일깨워준 선구자로 대한적십자사 조직 위원, 대한의학협회 대의원, 대한공중보건협회 회장, 전북대학교 평의원을 역임하는 등 의료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이영춘 가옥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영화 빙점, 드라마 장군의 아들, 모래시계에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말 고운 단풍으로 물든 이영춘 가옥에서 아름다운 풍경도 보시고 쌍천 이영춘 박사님의 업적도 돌아보면 좋을 듯싶어 전북의 가을 여행지로 추천합니다.

/전북도 블로그기자단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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