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암의 제자들 스승의 서맥을 잇다
강암의 제자들 스승의 서맥을 잇다
  • 조석창
  • 승인 2020.06.02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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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강암 연묵회 회원전
소리문화전당서 8일까지
90명 회원 좌우명 중심
창작작품 178점 선봬

제52회 강암 연묵회 회원전이 3일부터 8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전북의 서예가 강암 송성용 제자들로 구성된 강암 연묵회는 이번 전시에서 창립 52주년을 맞아 제52회 회원전을 개최하는 것이다.

지난 1968년 2월 창립된 강암 연묵회는 창립당시 항일시대 호남의 큰 유학자인 고재 이병은 선생의 자제인 이도형 선생을 창립회장으로 하고, 당시 명망이 높았던 황면주 변호사를 이사장으로 출범했다.

당시 강암은 1966년 54세 때 제1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즉 국전에서 서예부 최고상인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전국 각지에서 제자들이 모여들면서 제자들 모임인 강암 연묵회가 창립된 것이다.

연묵회는 창립된 그해에 제1회 전북 서예전람회를 개최했다.

이것은 전북 예술계에 큰 사건으로 여겨지는데, 국전과 똑같은 양식과 비슷한 규모의 지방 서예전이 전국 최초로 전북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것을 계기로 전북의 서예의 고장으로 선두에 서게 됐고, 이듬해에는 전북의 각 예술단체들이 합류해 국전과 같은 형식의 지방 단위 종합 미술전람회인 ‘전북미술전람회’가 열리게 된다.

또 전북 미술전람회가 계기가 돼 전국의 시도가 해당 시도의 이름을 내건 종합미술전람회를 개최하게 되어 지금은 전국에 각 도와 특별시의 이름을 딴 종합미술전람회가 다 자리하게 되었다.

바로 연묵회 즉 오늘날의 강암 연묵회는 서울에 대한 지방 미술전람회의 선두를 개척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묵회는 1982년에 지방 소재의 예술단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대만과의 국제 교류전을 개최함으로써 서예의 국제교류를 선도했다.

연묵회의 선도아래 1980년대에 국제교류전 바람이 일면서 한국 서예는 광복 후, 가장 뜨거운 전성기를 맞았다.

연묵회가 한국서단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큰 셈이다.

강암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예에 정신하던 연묵회는 1999년 2월 강암이 서거하자 뜻을 받들겠다는 의지를 더욱 다지면서 회의 명칭을 ‘강암연묵회’로 바꾸고 뜻을 함께하는 신입 회원을 지속적으로 영입했다.

현재 강암연묵회는 141명의 회원을 가진 서예단체로서 규모 면에서나 실력 면에서나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전북의 서예뿐 아니라 한국의 서예를 선도하고 있다.

이번 제52회 회원전은 ‘스승의 교훈, 나의 좌우명’이라는 주제아래 90명의 회원들이 참가한다.

직접 스승님으로부터 받은 좌우명뿐 아니라, 책, 자연, 이웃 등 주변의 모든 ‘배울 거리’로부터 배워서 얻게 된 자신의 좌우명을 중심으로 창작한 작품 2점씩 모두 17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제작한 도록의 표지에는 강암이 동일 주제로 29세 때에 쓴 작품과 68세에 쓴 작품을 비교해 게재했다.

“29세 때에 쌓은 탄탄한 기초가 있었기에 68세 때에 이처럼 창신적인 작품을 창작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강암 연묵회 회원 모두 따라 배워야 할 점이리라”라는 설명을 붙임으로써 스승의 좇아 배우며 스승의 서맥을 이으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강암연묵회 김병기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뒤숭숭한 분위기지만 회원들의 창작 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뜨겁다”며 “코로나19로 개막식은 생략한 채 전시회가 진행되며, 방역 수칙을 잘 지키는 가운데 전시장을 들려달라”고 당부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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