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20년 한 해가 저물어 갈 시간이 문턱까지 왔다.

올초부터 불어 닥친 우한발 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 패턴도 변화시켰고, 의식구조도 바뀌게 만들었다.

분명 코로나는 우리에게 好惡 양면을 주었다.

자연을 훼손하고 물질문명 발달로 인한 환경파괴, 그리고 기후 온난화로 극지방의 만년설이 녹는 해빙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욕심에 의해 자연은 파괴되고 땅속에 있던 고대의 병원체가 대기속으로 살아나면서 인간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험난한 속으로 들어가면서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가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 한해 한 해 넘기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때론 마음을 다급하게 하고 한편 두렵기도 하다.

벌써 고령자라고 하는 60대에 들어온지도 몇 해 되었다.

예전에 60대하면 환갑이라하여 거창한 잔치를 벌였지만 지금은 청년기로 부를 정도로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다.

60대 넘은 필자를 누군가는 그저 볼품없는 노인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아직은 살 날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삶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여정이 아닌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여정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농구 경기의 마지막 4쿼터가 제일 스릴이 넘치고 재미 있듯이 마지막 라운드가 가장 흥미진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삶은 청년기 중년기 황혼기의 3단계로 나뉘어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마지막 단계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의미한 단계로 쉽게 간과하는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다거나 이 나이에 뭐 그런 것을 계획하느냐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생산적인 일을 할까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필자의 주변에는 50대에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들이 많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짧고 굵은 인생을 마무리한 친구들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가 깊이 들어간다는 것이 반드시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짧은 인생에서 나이가 들수록 육체의 한계에 부딪치고 때로는 인생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삶의 제한이 인생에서 더욱 빛나는 성과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기록을 보면 세상에 나와 삶의 여정에서 육신의 여러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걸림돌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세운 분들도 있다.

그 중에 로마제국의 황제 줄리어스 시저는 간질 환자였다.

그리고 1443년 훈민정음 창제한 세종대왕은 이미 실명한 상태인 후천적 시각 장애자였으며, [엘리제를 위하여]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작곡가 베토벤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었고,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결핵 환자였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는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자였고, 유명한 연설가이자 정치운동가인 헬렌 켈러는 태어난 지 19개월부터 청각과 시각을 잃었고, 보물섬 등 희대의 명작소설을 펴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가는 삶의 대부분을 질병으로 인한 장애를 안고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한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분들도 신체의 부자연스러움을 극복하고 세기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나에게 40대라면 인생을 뒤바뀔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을 가질 것이다.

당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면 다가올 황혼기를 준비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누구나 세월을 붙잡을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노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나이에 때때로 겪는 실패와 어려움을 그저 육체적 나약함과 한계 때문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그러한 육체적 한계마저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으로 남은 인생을 멋지고 힘차게 살아가길 기도해 본다.

끝으로, 이참에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는 성경말씀을 음미해 본다.

/신세대 건축 추원호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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