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점

이문희 전북시인협회 편집위원

 

어느 무덥던 여름날이었지
어떻게 은점에 오게 됐는지 알 순 없지만
 
은점이라는 말에는 왠지
엄마가 수놓은 낡은 상보에 별들이 총총 박혀 떠 있기도 하고
몇 해 전 잃어버린 결혼반지도 먼 수평선에 걸려 있을 것만 같았지
그런 끌림이 무작정 좋았을 거야 
 
사흘만 곁에 있어 달라 했을 때도 나는 은점에 있었어
보름달이 뜨고 나서야 너는 창백한 얼굴을 보여주었지만 
너무 작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까도 했고
웃는지 우는지 자세히 보려면 램프를 켜야 했지
 
생각해봐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너처럼 
平平해질 수만 있었겠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파도를 놓아주는 일이야 
 
세상은 소원을 들어주는 공장이 아니라 
소원을 쌓고 또 쌓고 허물어지도록 매일 쌓아야 한다는 거지
 
삶에 밀리고 밀려서 어딘가에 도착하게 된다면
은점에 와봐 
은점, 은점 하고 입안에 굴리다 보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야
지나간 화살 같은 건 모두 잊게 돼
딱히 갈 곳도 없는 마음 같은 그 애틋한 이름의


 
# 시작노트

잘못 든 길에 은점이 있었다.

삶이란 게 없는 길을 만드는 일이 아니던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 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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