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무대 밟아 꿈 이뤄··· 전북 김선수

바이애슬론시작 초등때부터
올림픽 꿈꿔 80위권서 마감
노하우 전수 등 지원 다할 것

“올림픽 무대를 밟고 싶은 소망을 이뤘다. 기록은 다소 아쉽지만 큰 대회에 출전해 많은 것을 느끼는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도 체력관리에 집중해 남은 선수생활에 최선을 다하겠다.”

대한민국 바이애슬론 간판스타인 김선수(전북도체육회)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바이애슬론을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꿨던 무대다.

34살의 나이에 참가한 올림픽 무대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60위권 진입이 목표였지만 80위권에서 대회를 마감져야 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20년 넘게 함께했던 바이애슬론 선수로써 올림픽 참가라는 큰 영예를 얻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온 34살의 참가는 오히려 이색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무주초등학교 시절 바이애슬론을 시작했다.

이주 무주중과 무주고를 다니면서 대한민국 바이애슬론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학생시절에는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3관왕을 잇따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바이애슬론 유로파컵 주니어 부문을 통해 국제 대회에 처음 출전하기도 했다.

국내 바이애슬론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항상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 잦은 부상을 당해 올림픽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간절히 원하면 기회가 온다고 했다.

포인트 점수가 세계 20위 이내 진입해야 하는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다.

2007년부터 3차례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출전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무릎 수술이나 어깨 등을 다치며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

이번 올림픽 역시 착실하게 포인트를 획득하며 국내 후보군 중 가장 좋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귀화선수들에 밀려 올림픽 출전이 또 멀어지는 듯 싶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중순 귀화 선수 중 한 명이 올림픽 불참을 결정하며 빈자리가 생긴 것이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올림픽 참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에 선수가 아닌 심판으로 참가한 것이다.

비록 심판으로 참여했지만 ‘꿈의 무대’에서 나름의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이름 그대로 선수로 참가했다.

국가대표가 된 지 17년 만에 올림픽 참가다.

그만큼 특별하고 간절한 올림픽 무대였다.

부담은 컸지만 SNS를 통한 응원의 메시지에 힘을 얻었다.

늦은 나이에 외국선수들의 타고난 신체적 조건을 따라잡는 것은 역부족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목표한 바를 이뤘으니 여한은 없다.

이제 선수 생활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갔음을 느끼게 됐다.

하루하루 몸 상태가 예전과 다름을 느낀다.

언제까지 현역선수로 활동할지 모르지만 멀지 않았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선수생활을 마치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

예전부터 배웠던 경험과 최근에 얻은 방식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다.

전북 바이애슬론이 보다 발전할 수 있다면 남은 기간에도 최선을 다할 각오다.

“올림픽은 어린 시절부터 이루고 싶었던 목표였다. 올림픽을 통해 더욱 성장한 느낌이 든다.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선배로 비춰지고 싶으며, 전북바이애슬론 발전을 위해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다하겠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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