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주 전주시 기획조정국장
/황권주 전주시 기획조정국장

신록이 푸르다 못해 산야의 그림자까지도 쪽빛으로 물드는 5월이다.

봄꽃들 떨어진 자리마다 꽃보다 아름다운 푸르른 쪽빛이 피어나, 그야말로 싱그러운 봄날이다.

이렇게 빛나는 계절에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자리한 것도 어쩌면 가장 좋은 시절을 기리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최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일제강점기 등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 「파친코」 라는 드라마가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삶과 일본과 미국으로 이어지는 이민사를 다룬 작품으로, 주인공인 ‘선자’라는 여인이 한국 근현대사의 혼란 그 자체인 격동의 시간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꿋꿋하게 지켜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것은, 그러한 역사가 비단 한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속의 역사와 여성, 이민자들의 모습이자, 개혁과 전쟁, 이념 갈등 등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내온 어버이 세대의 공통된 삶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나 때마다의 어려움과 고통은 있기 마련이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 투쟁 등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오며 자식들만은 잘사는 세상을 위해 그저 앞으로 달려온 어버이 세대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질 때가 많다.

그리고 가끔은 우리 사회가 그분들을 위한 충분한 제도를 지원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작게는 우리 자신은 부모님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가?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세태가 빠르게 달라져, 전통적인 가족질서는 붕괴되고 과거의 윤리나 도덕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고리타분한 논리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각종 정보가 쏟아지는 스마트폰만이 이 시대의 유일한 이념이고 세상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두세 살만 되면 유튜브를 보는 아이들부터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중장년의 어른들까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손을 잡는 대신 우리는 어느새 ‘비대면’의 감정교류에 익숙해져 버렸다.

물론, 오랜 시간 계속된 코로나19가 가져온 시대적 변화이기도 하다.

사회적 만남은 물론 가족 간의 만남도 자제하느라 먼 거리의 가족들은 몇 해간 못 보았다는 것이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가장 슬픈 것은 방역 조치 등으로 요양병원에 계시는 부모님을 몇 해간 뵙지 못했다거나 중환자실 등에서 임종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는 경우다.

슬픔도 깊어지면 말이 되지 못하듯이, 시대적 상황에 체념한 채 서로의 그리움을 삼킨 시간이 오래되었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조금씩 누그러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의 2년 만에 전면해제되었다.

마스크 방침도 완화되어 일상으로의 회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이럴 때, 멀리 여행도 좋고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모임도 좋지만, 무엇보다 어버이를 생각하는 작은 마음을 소망해본다.

지금 전주는 축제가 한창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하여 전주의 거리는 영화로 물들고, 곳곳에서 버스킹, 문화 행사도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어린이날부터 시작되는 전주한지문화축제 또한 한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전주동물원의 신록,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골목길, 각종 드라마촬영지의 즐거움 등 가까운 곳에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주의 곳곳을, 비록 걸음은 느리지만 그 걸음으로 우리를 한 걸음 내딛게 해왔던 어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

거창한 효도나 선물이 아니더라도 어버이는 그것만으로도 지나온 모든 나날이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시리라.

과거 어린이들이 서당에서 공부했다는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즉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시지 않는다”고.

오랜 코로나19의 고적함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이 반짝이는 신록 속에 미소짓는 5월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황권주 전주시 기획조정국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