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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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된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서 미정이라는 한 여성이 구씨라는 남성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한다.

추앙은 일상에서 널리 쓰는 단어는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이라 순간 웃음이 터졌다.

이 드라마는 꽤 인기를 끌었고 ‘추앙하라’는 말은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추앙의 사전적 정의는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이다.

연인들, 특히 사랑을 시작하려는 남녀사이에서는 더더욱 쓰기 힘든 단어다.

작가는 왜 추앙이라는 단어를 썼고, 미정이 말한 추앙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생소한 단어를 부각시킨 것 자체가 ‘해방’이고, 일상에서 무덤덤하게 말하는 ‘관심’이나 ‘사랑’과 같은 표현을 초월하는 변화에 대한 갈망을 부각시키려고 한 것 아닐까?정치권에서야 말로 드라마 속 미정이 말하는 추앙이 필요하다.

다름 아닌 민의에 대한 추앙이다.

정치권에서 쓰는 민의는 너무나 진부하다.

감동이 없다.

국민도 진부한 민의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할 것이다.

“민의를 따르겠다”, “민의를 존중한다”는 식의 정치적 수사(修辭)로는 민의를 추앙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민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국민의 총의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

민의를 알기 위해 여론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민의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물론 여론조사결과가 완전한 민의는 아니지만 민의의 풍향계가 될 수 있고, 때로는 그 결과를 통해 민의가 보내는 강력한 경고의 시그널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별로 의미가 없다”거나 “지지율은 별로 신경 안 쓴다”는 식의 발언은 민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낮게 나오면 최소한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분석해봐야 한다.

이것이 민의를 추앙하기 위한 기본적이 자세다.

민의를 왜 추앙해야 할까? 민의를 추앙하면 국정의 정당성과 강력한 추진동력을 얻는다.

따라서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에서 여야가 대립하거나,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의 경우에는 더더욱 민의를 추앙해야 한다.

민의를 추앙하지 않으면 국정운영에 막대한 어려움을 겪고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민의에 대한 추앙은 정당의 운영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당의 대표나 최고위원을 선출하면서 국민의 뜻을 묻지 않는다면 민의에 대한 추앙이라 할 수 없다.

비록 한 정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지만 공당의 대표로 여당을 상대하고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결국 구씨는 미정을 추앙한다.

미정 역시 말하지는 않지만 구씨를 추앙하듯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라는 고백을 한다.

이 결론이 단순히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불과한 걸까? 민의를 추앙한 결론도 같으리라.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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