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神을 이용해 인간을 지배하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장 8절~10절)

<대심문관>이 말하길 "이 지구는 아직도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끝내 목적을 관철하여 케사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인류의 세계적 행복을 생각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때 이미 케사르의 검을 손에 잡을 수 있었는데 어째서 그 최후의 선물을 물리쳤느냐? 그때 그 위력 있는 악마의 제 3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면, 너는 지상의 인류가 구하고 있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었을 거다. 즉 숭배할 만한 사람과 양심을 맡길 만한 사람, 그리고 모든 인간이 세계적으로 일치하여 개미처럼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왜냐하면 세계적 결합의 요구는 인류의 제 3의 고민거리인 동시에 마지막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너는 자기의 <선택된 사람들>을 자랑하지만, 그 대신 너에겐 그 선택된 사람들밖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안식을 주고 있다. 그뿐 만이 아니다. 그 선택된 사람들, 선택된 사람이 될 수 있는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를 기다리다 지쳐서, 그 정신력과 정력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또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너를 향해 자유의 反旗를 높이 들게 될 거다. "

"그렇다, 우리는 그들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겠다. 그들은 무력하고 의지가 박약한 자들이므로 죄를 범하는 것을 용서해 주면 어린애처럼 우리를 따르게 될 거다. 어떤 죄든지 우리의 허락만 받으면 모두 속죄될 것이라고 우리는 그들에게 말해 주련다. 죄악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 죄에 대한 벌은 우리가 떠맡겠다고 일러주겠다.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들의 죄를 대신 맡아 준 은인이라 하여 우리를 숭배하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는 무엇 하나 숨기려 들지 않게 될거란 말이다." 

"그들이 아내 이외에 情婦를 두고 사는 일도, 아이를 가지거나 안 가지는 일도, 모든 것을 그 복종의 정도에 따라 허가하기도 하고 금지하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기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복종하게 되는 거다. 가장 괴로운 양심의 비밀까지도, 그 밖의 무엇이든 하나도 숨김없이 모조리 우리한테 털어놓을 것이고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내리는 해결을 기꺼이 믿을 것임에 틀림없어. 왜냐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걱정거리에서 피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스스로 자유롭게 해결지어야 하는 무서운 고통에서도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지. 이리하여 모든 인간은, 수백 만의 모든 인간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통솔하는 몇십만의 사람들만은 여기서 제외될 거다. 왜냐하면 비밀을 간직해야 하는 우리들만은 불행을 감수해야 하니까. 즉 수억의 행복한 갓난아기들과 선악을 판별하는 저주를 몸에 지닌 수백만 명의 受難者가 생겨나는 거지. 이들 대다수의 불쌍한 갓난아기들은 너의 이름을 위해 죽어가는 거야. 조용히 사라져 가는 거지. 그리고 무덤 저쪽에서 그들은 죽음 이외의 아무 것도 발견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나 우리는 비밀을 간직한 채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천국과 영원이라는 보상을 미끼로 그들을 유혹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저 세상에 무언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그들과 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은 번지르 하지만 결국 神을 이용하여 인간들을 지배하겠다는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간판으로는 어디까지나사랑의 하나님의 무오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본인들은 애초에 전혀 사랑에 관심이 없다는 변명을 교묘히 강변하는 것이죠. <예수>께서 세상을 사람이나 <사탄>의 논리에 두지 않으셨기에 물러가도록 했는데 오히려 너무도 어려운 하나님의 기준에 대해 냉소합니다.

「(알로샤의 말)" 가슴과 머리에 그런 지옥을 품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요? 아니, 형님은 예수회 사람들을 찾기 위해 여길 떠날 겁니다. •••••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살이라도 해 버릴 겁니다.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을 거예요."

"무엇이든 견디어 낼 만한 힘은 있어!"

이미 이반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조소가 서려 있었다.

"어떤 힘인데요?"

"까라마조프적인 힘이지 ••••. 까라마조프적인 비열한 힘 말이다."

"그건 음탕 속에 빠져 타락 속에서 영혼을 질식시키는 거죠. 그렇죠, 형님?"

"그럴지도 모르지 •••••. 그러나 그건 서른 살까지야. 어쩌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때는 ••••••."

"어떻게 벗어난다는 겁니까, 무엇으로요? 형님 같은 사상을 가지고는 불가능해요."

"그것 역시 까라마조프식으로 하는 거야."

"그건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겁니까? 정말 모든 것은 허용되는 걸까요. 그렇습니까, 형님?"

이반은 미간은 찌푸리고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스토예프스끼>의 생각으로는 온전한 진리를 깨달았음에도 오만하고 잔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기 자신의 오만한 정신을 따라 사악한 교만을 먹고 살아간다고 분류합니다. <대심문관>, 즉 <이반 까라마조프>로 대표 되어지는 人神을 추종하는 부류의 오류는 사랑의 하나님 또는 <예수>님이 무오류임에 반항합니다. 그러나 무오류임을 인정하는 까닭에 도리어 하나님을 인정하는 역설을 보입니다. 위의 마지막 대화에서 <이반 까라마조프>는 이를 드러냅니다. 

<도스토예프스끼> 소설의 전반적 특징은 어떠한 악인들에게도 비판적 시선을 섣불리 보여주지 않습니다. 덤덤히 기술할 뿐입니다. 어벙한 <톨스토이>가 저자로서의 자제력을 상실하며 자주 보여주는 신랄한 추궁들 따위는 보기 힘듭니다.  

그의 책들은 인생의 허무하고 덧없음이 뼈저리게 드러납니다. 그는 이를 생명에 대한 사랑,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아파함으로, 즉 연민으로 얻게 되는 기쁨의 최종적 의미는 전혀 다른 생명에 대한 갈망이고, 이것이 곧 낙원에 대한 갈망입니다. 그리고 그는 소설 속 <조시마> 장로의 입을 빌려 "인생은 낙원이란다. 우리 모두는 낙원에서 살고 있지. 우리는 그것을 도무지 깨달으려 하지 않는구나.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걸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내일 낙원에 있을거야."라고 설파합니다.

소설계의 끝판왕에 대한 리뷰를 마칩니다.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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