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락하는 쌀값에 성난 農心··· 장기대책 내놔야

45년만에 사상초유 쌀값 폭락
도내곳곳 '벼 갈아엎기' 투쟁
전북지역농협 재고 6만6천t 쌓여
시장격리의무 근본대책마련 목청
여야 '양곡관리법' 놓고 대립
민주 개정안 단독처리 추진에
국힘 안건조정위회 카드 꺼내
올해도 벼생산 풍년 예고에
정부 45만t 쌀 시장격리 실시
1인가구 증가등 쌀수요감소에
단기미봉책불과 쌀값안정안돼

수확기에 접어든 농촌 들녘에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45년 만의 유례없는 쌀값 폭락이라는 현실 앞에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다.

물가는 치솟는데 유독 쌀값만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현실을 원망하며 농민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농민들은 정부를 향해 “폭락하는 쌀값 대책을 마련하라”며 성난 농심(農心)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쌀값이 폭락하자 수확을 앞둔 농민들은 도내 곳곳에서 논을 갈아엎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은 지난 26일 정부가 제시한 45만톤 규모 쌀 시장격리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북을 비롯한 쌀 주산지 8개 도 대표 도지사들도 지난 15일 국회 앞에서 쌀값 안정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농민들에게 쌀값 폭락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쌀 시장 격리 의무화를 담은 ‘양곡관리법’을 내놓았지만, 국민의힘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45만톤 규모의 쌀 시장격리 조치로 응수하고 있을 뿐이다.

쌀값 하락으로 벼랑 끝에 선 농민들의 현실과 근본 대책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벼랑 끝에 선 농심(農心)은 ‘숯덩이’  

“농민들은 45년 만에 벌어진 사상 초유의 쌀값 폭락 사태라는 현실 앞에 놓여 있다.

밥 한 공기 쌀값 300원을 보장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정책이 마련돼야 농민들은 그나마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지난 27일 익산시농민회가 익산시 오산면 영만리 한 농가에서 수확을 앞둔 벼 1필지(1200평)를 갈아엎었다.

이날 익산시농민회는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생산비가 보장되는 제도를 마련하고, 식량주권과 쌀 산업을 무너뜨리는 수입쌀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라는 것이 현장 농민들의 요구”라며 목청을 높였다.

고창농민회도 이날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한 농가에서 벼를 갈아엎은 채 농민 생존권 사수 투쟁에 나섰다.

28일 오전에는 정읍시 이평면 ‘만석보’ 들녁에서 200여명의 농민들이 모인 가운데 정읍농민회가 주관한 ‘쌀값보장 농민생존권 쟁취를 위한 논 갈아엎기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2021년 벼 생산량이 평년에 비해 27만t 초과 생산됐다는 이유로 쌀값 하락이 시작됐는데도 정부는 양곡관리법에 명시된 자동시장격리를 발동하지 않았고, 이에 쌀값이 최대 폭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성토했다.

지난달 말 김제에서 시작된 벼 갈아엎기 투쟁은 수확기를 맞아 도내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쌀값 폭락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이 도내 곳곳에서 벼를 갈아엎으며 대 정부 투쟁을 결의하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산지에 재고가 수북이 쌓여 있다는 점이다.

올해 산 햅쌀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2021년산 재고 상황은 심각하기 짝이 없다.

지난 8월말 기준 농협 쌀 재고량은 31만3천t이다.

평년 12만8천t과 비교해 볼 때 2.4배나 많은 양이다.

전북지역 농협들의 재고는 8월말 기준 구곡 6만6천t이 쌓여 있다.

정부는 쌀 재고를 해결한다며 올 들어 지난 2월 14만4천t, 5월 12만6천t, 7월 10만t 등 세 차례에 걸쳐 모두 37만t을 격리했다.

하지만 쌀값은 세 차례 격리 직후 되레 더 떨어졌다.

결국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25일 당정이 모여 급락세를 보이는 쌀값 안정을 위해 45만t의 쌀을 시장 격리 조치하기로 했다.

격리 의무화보다는 전략 작물 직불제를 내년부터 신규로 도입·추진해 가루 쌀·밀·콩과 조사료의 재배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은 지난 26일 정부의 45만톤 규모 쌀 시장격리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연맹은 성명서에서 정부와 여당은 정작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근본 대책에는 반대만 하고 있다.

이번 시장격리 조치는 임시 수습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공정 가격을 위해서는 수입 쌀 문제와 생산비 급등에 따른 대책도 필요하다며 종합적인 쌀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산지 쌀값은 지난 15일 기준 20kg에 4만725원으로 전년 동기(5만4228원) 대비 24.9% 하락했다.

이 같은 쌀값 하락률은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내놓은 지난 1977년 이후 45년 만에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도 20㎏짜리 산지 쌀값이 8월 15일 4만2천522원에서 9월 5일 4만1천185원, 9월 15일에는 4만725원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처럼 쌀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경우 신곡 조사를 시작하는 10월 5일에는 4만원선이 붕괴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수확이 시작된 햅쌀가격 전망도 암울하다.

재배면적이 지난해에 비해 0.7%에 해당하는 5천319㏊ 감소한데다 작황까지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쌀값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2년 연속 쌀값이 급락할 경우 농가의 타격은 심각할 수 밖에 없다.

쌀 농가들의 채산성은 나빠졌지만 생산비가 급등해 농민들을 한숨짓게 하고 있다.

다행히 뒤늦게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지만 첨예한 여야 대치로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기에 다른 각종 물가는 치솟고 있는데 쌀값을 물가관리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팽배해지고 있다.


▲‘양곡관리법’ 놓고 여야 극한 대치  

쌀 농가들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시장격리 도입은 야당과 정부ㆍ여당 간 입장차로 공전 을 거듭하고 있다.

야당은 쌀값이 폭락할 경우 정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강행을, 여당은 안건조정위원회 카드로 맞불을 놓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 15일 농림축산식품법안소위를 열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심사를 통해 시장격리 요건 충족 시 미곡 시장격리 의무화, 논 타작물재배 농민에 대한 재정적 지원 근거를 담은 대안을 의결했다.

양곡관리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소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야의 대치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후 여야는 지난 26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또 다시 대립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단독 처리를 추진하자 국민의힘 요구로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최대 90일간 추가 논의를 거치게 됐다.

여야 간사는 이날 양곡관리법 개정안 상정에 앞서 논의에 들어갔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래 전부터 ‘쌀값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반복되는 쌀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시장격리제 도입과 쌀 의무수입물량 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은 당장 올 수확기 쌀값 정상화를 위해 지난해 산 재고 쌀과 햇벼 초과생산량에 대해 충분한 물량의 시장격리를 조속히 확정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또 장기적으로 생산조정 예산 1천500억원을 세우고 예측 시스템을 고도화해 만성적인 생산과잉 문제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했다.

특히 개정안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하면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농해수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야 합의 없는 양곡관리법 날치기 처리를 규탄했다.

소위원장 사퇴와 이날 처리된 양곡관리법 무효를 주장했다.

지난 16일 전북지역을 찾은 민주당 지도부는 양곡관리법의 입법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김제에서 농업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농해수위 소위에서 시장격리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다”며 “일각에선 일방통행이라고 지적하지만, 이야말로 속도전으로 국민이 준 권한을 최대치로 행사해야 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본다”고 말했다.


▲쌀 가격 안정 위한 근본대책 마련돼야  

구곡 쌀 재고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다 올해 생산도 풍년이 예고돼 향후 벼 매입을 둘러싸고 대혼란이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당정은 지난 25일 쌀값 안정을 위해 올해 수확기에 역대 최대 물량인 총 45만t 규모의 쌀 시장 격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 농협 창고에는 여전히 구곡이 가득 쌓여 있어 쌀값 안정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협 창고에 있는 쌀 재고량은 지난달 말 기준 31만t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많다.

여전히 민간에는 쌀이 넘치고 있는데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폭락하는 쌀 가격 안정화를 위해 시장격리를 발표했지만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쌀 수요 감소에 따른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 쌀 수급 불안은 올 수확기를 넘어 갈수록 심화해 내년에는 더 큰 충격이 다가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쌀 ‘시장격리 의무화’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는 쌀 산업을 제대로 살려내는 해법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정부 대책과는 별개로 ‘시장격리 의무화’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계획이다.

 무엇보다 농민들은 “정부가 더 이상 쌀값 안정대책 마련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선제적 시장격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맨 먼저 지난해 산 재고미를 전량 매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구조적 생산과잉을 막기 위해 논 타작물재배 지원사업 재개는 물론, 생산량이 수요량을 일정 수준 이상 웃돌 경우 정부가 자동으로 시장에서 사들여 격리하는 ‘쌀 자동시장 격리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논의를 시작했지만 남 탓을 하는 정치공방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 대다수 농민들의 주장이다.

지난 16일 이재명 당대표가 김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상철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장은 “일시적 시장격리보다 항구적인 가격유지 대책이 필요하다”며 “변동형 직불제 취지를 살리는 양곡법 개정 및 충분한 농업예산확보, 유통과정 개선, 기후변화 대응 농업 등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4일 전북도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가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전북연합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 5일까지 쌀값은 27.5%나 폭락했고, 산지 나락 값은 몇 주 전부터 30% 이상 폭락했는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성토했다.

이어 “정부는 농·축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고사하고 밥상물가를 핑계로 농·축산물 수입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당장 수확기를 앞둔 상황에서 쌀값 등 농·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격적인 쌀 수확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올해도 초과공급이 우려되는 만큼 쌀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물량을 선제적으로 격리시킬 방안 마련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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