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조 전북시인협회 회장
/김현조 전북시인협회 회장

가을! 예찬하고 싶은 날입니다. 기온은 적당하고 날씨가 맑아서 행복함이 저절로 물들어가는 날입니다. 어느 시인은 “죽기 좋은 날이구나” 하며 옛 어른들이 찬탄한다는 시구절을 남기었습니다만 어떤 계절도 어떤 날에도 죽기에 적당한 날은 없습니다. 

한 노인의 죽음은 한 마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무거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 시인과의 이별은 어느 정도의 무게와 얼마만큼의 이야기가 단절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생은 시가 전부였고 문학이 전부였습니다. 시로써 스스로를 증명하셨고 문학으로써 전북문단의 기틀을 잡으셨습니다. 시로써 제자를 길러내셨고 문학으로 전북문단을 단합하게 하셨습니다. 운명하시기까지 열린시를 통한 제자 사랑이 각별하시었고 전북문단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은 간절하시었습니다. 이보다 더 치열한 시인의 생이 있었을까요? 이보다 더 진지한 삶을 살았을까요? 우리는 한마을의 사라짐이 아니라 전북문단의 역사가 사라졌다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듬이가 되어 선생님께서 남기신 업적을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슬픈 일 중의 하나는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입니다. 선생님의 이름 하나가 제자들의 가을을 통째로 채웠고 나머지를 모두 지웠습니다. 빛나는 눈과 단단한 바위같은 모습으로 뵈었는데, 바람이 구름과 함께하듯 선생님은 계절과 함께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선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눈물도 많으셨습니다. 슬픈 일에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도 눈물을 왈칵 쏟으셨습니다. 마치 소나기처럼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기쁜 일에는 유월 장미처럼 환하게 웃어주셨습니다. 아직도 선생님의 환한 웃음이 선연합니다. 제자 사랑도 지극하셔서 유명한 시인들, 이름 높은 문인들 다 제쳐두고 제자들 자랑을 앞세우셨고, 제자들이 하는 일은 앞장서서 지지하고 응원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모든 것이 편지이고 시이고 그리움과 낭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것도 없는 쓸쓸함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시인으로 태어나서 문학인으로 평생을 살으셨습니다. 자식을 길러낸 것처럼 제자를 기르셨습니다. 스승으로 선배로 모범을 보이신 선각자였습니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왔을 때는 다음 세상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어느 만남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만남은 없다고 합니다만 복중에 제일가는 복은 인연 복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제자들에게는 선생님과의 만남을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인연 복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수많은 단어를 나열하고 명문장을 다 모아도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에 비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시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제자들 사랑하심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선 일찍이 ‘열린시’라는 문학창작반을 개설해서 수많은 시인을 배출하였습니다. 당시에 많은 비난과 질시가 있었지만, 그때 배출된 선생님의 제자들은 전북 문단의 동량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초대 전북문학관장이 되어서는 우리 전북도 문단의 기틀이 외형적으로 갖추어졌다며 얼마나 행복해 하셨는지요? 전북문학관 뜰의 풀을 뽑으시고 정원 나무를 가꾸시며 자랑스러워 하시던 모습이 어제련 듯 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 선생님은 자유를 얻어 크고 넓은 하늘을 반짝이는 별이 되셨고 드디어는 이 세상과 이별을 하셨습니다. 이별은 그냥 이별이 아니라 밤마다 빛나는 별로써 내려다보시고 땅에선 올려다보면서 우리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기억할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가을은 이별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선생님께선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날에 작별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제자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배웅하고자 합니다. 절대로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않을 것이며 선생님께서 당부하신 문학에 대한 열정도 식히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의 명성에 어긋나지 않게 정진하며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이 그리울 때면 밤하늘을 보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날 때면 바람을 느껴보겠습니다. 선생님과의 기억은 구름과 꽃과 시를 통해 오래오래 추억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늘동산에서 자유롭게 시를 지으며 노니시는 중산 이운룡 선생님을 이승에서 배웅하며 삼가 제자를 대표하여 전송의 글을 올립니다. 

/김현조 전북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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