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한밤중 지인과 술자리를 하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날벼락 같은 소식에 술맛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 생각에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집에 있는 것이 확인된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러나... 나만 아니면 되는 것인가.

이태원 참사를 두고 참사가 아니고 사고네, 인재가 아니고 천재네, 희생자가 아니고 사망자네, 근조 리본을 다네 안다네, 책임 소재가 있네 없네 정말 말들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랴. 10대, 20대 완전히 피지도 못한 꽃송이들이 져 간 마당에. 그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구조를 위해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주인을 잃은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들리는데 차마 받을 수 없었을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156명 사망. 151명 부상. 이 참사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후 3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핼러윈 행사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설레임과 기대를 안겨 주었다. 당연히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모일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사고 전날에도 이미 많은 인원이 몰렸음에도 안전 조치는 전혀 없었다. 이번 핼러윈 행사 때 배치된 경찰 병력은 고작 137명뿐이었으며 그나마 치안, 성범죄, 절도 등 범죄예방 임무에만 집중하도록 되어 있었고 다수 군중이 몰릴 경우의 매뉴얼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대비도 없었다.

게다가 참사 발생 4시간 전에 이미 112에 신고가 다수 접수되었고 시민들의 절규가 잇따른 사실도 확인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경찰 측은 광화문 집회 현장에 많은 인원이 배치되어 참사 현장에 갈 수 없었다는 아주 황망한 말도 했다. 참사의 책임을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 탓으로 돌리겠다는 말인가? 

외신이 이번 참사를 집중 보도하면서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창피를 떨었다. 뉴욕타임즈 등 외신은 이태원 참사를 충분히 회피할 수 있었던 인재로 보고 있다. BTS공연 시 55,000명의 관중을 모아놓고 공연할 때도 1,300명의 경찰을 배치해 안전사고 없이 치러진 것을 예로 들기도 했다. 대규모 인파가 운집할 것을 예견하고도 합당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꼬집기도 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 규정이 없어서 시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 과연 핑계나 되는 말일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 돈 몇 푼으로 유족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행안부장관과 경찰청장을 경질하면 정부의 책임은 없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언제나 재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8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묘하게도 이번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희생된 점, 사고 당시 초기 대응이 전혀 없었던 점, 재난 상황을 대비한 업무 매뉴얼이 없는 점, 무엇보다 누구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고 그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정부와 관련자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이번 대형 참사로 광산에 고립된 노동자들에 대한 구제는 관심이 떨어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사후약방문식의 대응책을 꼬집은 말이지만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제발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정부는 책임질 사안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지고 희생자과 그 가족, 그리고 국민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함께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제대로 된 재난대비 매뉴얼들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와 정부는 존재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보수네 진보네 그 어떤 정쟁보다 국민이 먼저고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우치길 바란다.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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