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리보다 목숨 경력직 용병의 동료애

["━모르오."

아버지 이름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면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날 희귀한 동물처럼 본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 이름을 아는 것만큼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 그들에게 너희는 어떻게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너희가 알고 있는 그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인지 어떻게 확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말이 길어진다. 그것이 귀찮아 그냥 이유를 설명해준다.

"━나는 사생아요."

들은 사람은 백이면 백, 모두 당황한다. 사실을 말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말이다. 뭔가 미안한 일을 저질렀다는 듯, 혹은 내가 대단한 불행을 당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듯 위로할 말을 찾는다.

그러나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것이 어째서 위로받을 일일까? 사실에 대한 지극히 사실적인 문답을 나눈 것뿐인데 왜들 그렇게 어쩔 줄 모르는 것일까? 그들이 날 이해할 수 없는 만큼 나도 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당혹스러운 기분이 드실 겁니다. 글이 대문호의 명작도 아니고 무협지라는 장르 소설의 첫 문장이기에 더욱 경악스러웠습니다.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재미가 최고 선입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재미는 전혀 없고 철학적이라면 당황하실 것입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스크린이 찢어져라 치켜올리실 겁니다. 저도 재미 없는 쟝르 소설은 딱 질색입니다만 시작부터 이렇게 치고들어오는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심심한데 아무 책도 읽히지 않고 아무 영화도 보고싶지 않은 날, 현재까지 질리지도 않고 일곱 번을 보았습니다. 이유야 당연히 너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흔한 대중 소설이나 TV나 영화 속 통속 드라마에서는 불우한 주인공의 인생 역전 성장 스토리가 널렸습니다. 주인공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끝에 알아낸 '사실은 원래 왕실, 귀족, 또는 재벌가의 숨겨진 후계자였다.'더라는 구질구질한 설정에 물릴대로 물리셨을 겁니다. 이런 책, 영화나 드라마를 재미로 보는 것도 한두 번이라서, 전개가 이미 촤르르 읽히니 그 작가의 것은 다시는 거들떠도 안 보게 되죠. 이미 상투적 줄거리는 벗어났을 거라고 짐작되시지 않나요!

'이게 뭐지?'하고 놀라며 책장을 넘기고 더 경악했습니다.위치도 중원과 거리가 먼 변두리인 신쟝 위구르 지역 바로 오른쪽 옆 감숙성에 있는, 이름도 제대로 안 알려진 두 방파가 광산의 이권을 두고 벌이는 피 흐르는 대립에, 그 중 한쪽에 경력직 용병으로 채용된 주인공 이름이 <대도오>입니다. 돈 받고 싸워주는 용병임에도 경력을 인정받아 흑풍조라는 이름의 조장이 됩니다만 그의 신념은 독특하게도 단 한 명의 부하도 잃지 않는 것이고, 다수의 전투에도 흑풍조원들은 전원이 살아 돌아오게 됩니다. 승리보다 동료 목숨이 더 소중하다는 반영웅적인 사고는, 주인공이 멋진 쾌남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틀에 박힌 책들이나 헐리웃 블로벅스터들보다 더 신선했습니다. 그것도 무대가 변두리입니다. 

당시에는 연세대 지질학과 출신의 작가 <야설록(夜雪綠)>이 인기 작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만의 <고룽(古龍)>의 영향을 이상한 쪽으로 많이 받으며 일부 설정은 표절까지 했던 <야설록>은 또한, 일본 사무라이들의 죽음의 미학에 너무 경도되어 싸구려 감상주의를 남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주로 주인공을 위해 일본 '주신구라(忠臣藏)'식 희생적 죽음을 너무 자주 택하는 줄거리를 너무 자주 우려먹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기가 떨어지던 한국창작무협계를 <야설록>이 더 말아먹었고 그중 능력있던 소수는 만화스토리 작가로 전향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무너져가던 한국창작무협계를 되살리고 싶다고 <야설록> 자신이 재산을 털어 만든 출판사에서 반영웅주의랄까 또는 기득권층에 대한 신랄한 야유를 보내며 <야설록>의 싸구려 감상주의를 극복한 걸작이 나온 것입니다.

30대에 전장터를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거친 사내가, 자신이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실존의 방황을 저처럼 쿨하게 넘기기란 쉬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의 의지가 강건하고, 아울러 육체적으로도 굳세게 느껴질 텐데요. 벌써 약간 삐딱하게, 조금의 정신적 사치 없이 간결하게 행동할 것으로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그가 벌이는 싸움은 무협 영화의 간지나는 무용의 느낌이 아니라, 굶주린 야수가 생존을 걸고 자신의 뼈를 내어줘가며 하는 전투가 되겠지요. 그래서 조금도 외설스러운 내용도 없습니다.

 한국창작무협의 최고 명작이라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3대 걸작에는 무조건 포함될 것입니다. 가끔 무협 소설도 보시면 좋습니다. 쟝르소설도 명작들이 심심찮게 있습니다. <J.J.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설입니다. 유럽식 무협 소설이죠.

작가인 <좌백>은 숭실대학교 철학과 수석 졸업자 출신입니다. 읽으실 분들을 위해 줄거리 소개는 않겠습니다.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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