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떳떳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있게 이야기하려고 무려 40년이 걸렸고, 대략 매 10년마다 총 네 번을 읽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파우스트]는 변변찮은 졸작입니다. 아시아 변방의, 그것도 문학 전공자도 아닌 의사가 내리는 문학적 평가가 전공자분들에겐 못마땅하시겠지만 천하의 <괴테>가 무려 60년을 갈아넣은 이 책은 별 것이 없읍니다.

차라리 <밀턴>의 [실낙원]이 무려 170여년을 앞섰음에도 훨씬 뛰어납니다.

[파우스트]가 별 거 아니더라는 글을 제가 자신있게 주장하려고 무려 30여 년을 들일 만큼 <괴테>는 잘 난 사람입니다. 거물이잖아요. 하지만 졸작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습니다.

인류 멸망 때까지 길이 남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라는 명작을 쓴 이가 왜 헛발질을 했을까요. [파우스트]에 왜 그토록 몰두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겪은 産苦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 변변치 않습니다. 바둑 용어로 '長考 끝에 惡手'를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파우스트]를 통해 알게 된 <괴테>의 세 가지 미덕을 굳이 들자면, 첫째로 바이마르 공국에서 해볼 것 다 해보고 누릴 것 다 누려 본  그가 실은 공화주의자였고, 둘째 역시 젊고도 예쁜 여자만을 진심으로 좋아했음을 솔직히 드러냈으며, 셋째 허방하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악마의 문화사]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일부러 <메피스토펠레스>는 생략했었습니다.

너무 긴 설명이 필요했기에 따로 분리해야 했습니다. 빌런이라고 하기엔 감초라고 해야 하나, 조연이라고 해야 할, 음란함에도 조금은 나사빠진 악당이 전혀 밉지 않아서죠. 그래서 [파우스트]에 대한 소개는 <메피스토펠레스>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사실 [욥기]에서 <사탄>이 하나님 곁에 있듯, [파우스트]에서는 하나님께서도 필요에 따라 <메피스토펠레스>를 부리신다고 설정합니다. 주변에 대천사들이 있음에도 할 말 다 합니다.  [욥기]에서 힌트를 얻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검은 개'의 모습으로 <파우스트> 앞에 처음 나타나서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내기를 하죠. 다 아시겠지만 "멈추어라, 너 진정 아름답구나!" 라는 말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영혼을 빼앗는다는 것인데 그 전까지는 <파우스트>가 원하는 쾌락을 모두 제공하는 설정이죠.

<파우스트>를 젊게 변하게 해서 <그레트헨>을 유혹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에 등장해서는 호색한이 늘어놓는 산전수전 다 겪은 너스레는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발푸르기스의 밤'에는 구체적으로 적혀있지 않아도 混淫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마녀들과 벌이는, 19금이긴 하지만, 어쩌면 해학적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하는 음탕한 대사와 몸짓으로 재미를 더해줍니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이 된 <헬레나>를 저승에서 불러와 아들까지 만들며 살게 해줍니다. 그야말로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다 누리게 해주는 것이죠. 하지만 희곡 자체로 돌아와서 과연 이런 쾌락의 서사적 나열이 <괴테>에게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희곡을 읽는 독자나, 연극을 보는 관객에게 사색이나 상상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작품은 그저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지나지 않습니다.

 <파우스트>의 모험에서의 <메피스토펠레스>는 내기가 있음을 빼면 [알라딘]에서의 '램프의 요정' <지니>에서 몇 걸음도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런 순간순간에 여성 합창단에게라도 농을 거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없었다면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죽고 <헬레나>도 저승으로 돌아가버린 뒤에야, 의미 부여가 되는 과업을 하나 완수한 [파우스트]가 구원되는 대목은 조금은 헛웃음이 나오는 촌극입니다. 성경 속 '돌아온 탕아' 이야기 부분을 읽은 기분이랄까요. 반복하지만 대체  왜 이 책을 썼을까요.

그래도 마지막 <메피스토펠레스>가 다 잡은 <파우스트>의 영혼을 놓치는 대목만큼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머리카락에 그리스 바르고, 바지 뒷춤에 도끼 빗 꽂은 모자란 논두렁 깡패가, 갑자기 나타난 매력적인 여자를 턱 빠진 표정으로 침 흘리며 보는 것처럼 천사들을 바라보다가 다 잡은 영혼을 놓치는, 그런 느낌으로 설정했습니다.

악마를, 현실의, 모질지 않은, 좀 어벙하고, 순박한 루저의 모습으로 아주 재미있게 바꿨습니다. 아마 그나마 [파우스트]에서 가장 가치있는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괴테>는 내심 악마가 귀여웠던 모양입니다.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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