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명시인 시집 '자작나무 숲에서'
적상산 그늘에 적힌 존재론적 원형질 시학

이봉명 시집 ‘자작나무 숲에서’가 발간됐다.

시인의 시편들을 나뭇잎과 풀잎, 시냇물 소리와 바람 등에 삶의 실재를 대응시켜 놓아 시에 오늘을 들인다.

시적 대상의 인간적 형상화라는 언어 미학을 성취한 셈이다.

또 기억 속의 풍경을 재현해내는 언어의 결은 주변부의 쓸쓸한 풍경을 호출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시에 언표된 자연과 일상은 따뜻하다.

느리게 어제가 되어 가는 슬레이트 지붕과 돌담과 거기에 넌출진 호박잎이며 멀리 떠나간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만 시인의 시편들은 독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농경문화의 삶이 가졌던 오랜 풍경을 체험케 할 뿐이다.

현대성이란 말에 개의치 않는 그의 시편들은 시의 중심부에서 삶의 외연으로까지 번지는 존재론의 샘물을 길어 올릴지언정 두메산골 또는 산촌이라는 외피를 두르지 않는다.

갈수록 동네가 텅텅 비어가도록 삶을 간섭하는 누구를 탓함이 없고 시간의 무상함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시인은 ‘꿀벌에 대한 명상’ 이후 ‘가풀막’에 이르기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냈다.

시독법이며 창작법은 물론 시어가 뿜어내는 빛깔의 회로까지 몸에 적혔던지 그의 시편들은 문명적 징후에 눌린 강박이나 지루한 산문적 진술은 없다.

이미지에 포획된 과감한 생략을 통한 시상의 돌연한 울림이 시편들 곳곳에서 반짝인다.

적상산의 토박이 정서에 활착된 시편들, 삶에 내재한 불가피성까지 끌어안은 그이 시 세계는 해맑음을 놓치지 않는다.

단 10행의 단연시 ‘가을비9’에 “값싼 갈치자반 올려 아침상 밀어 놓으면”과 “또 자꾸 씹어내며 도롱이 쓰고 주막에 간다”를 빼면 나머지 문장에 우리의 속담이나 입말이 도렷하게 자리를 지킨다.

시원으로부터 전해진 우리 말본새가 이처럼 마침맞게 딱 들어앉은 시적 상황은 매우 드물다.

무주의 적상산 밑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의 바깥에서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느낌이다.

이병초 시인은 “자본과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지는 순간 자유가 박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시에 언표된 자연이 공존이든 자본의 질서를 거절하는 시적 장치이든 시인의 몫이다”며 “인간사를 자연물에 빗댔든 자연물을 인간사에 빗대든 그 행위에서 촉발된 존재론적 원형질의 발화를 통해 시적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유용주 시인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쉽게 삐지고 시야가 좁아지고 고집 센 노인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시인이 세상을 보는 눈은 넓고도 풍성하다”며 “사람과 산은 직접 겪어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적상산 아래 포내리에 사는 이봉명의 모든 작품은 가난한 살림에 대한 착한 보고서이다”고 말했다.

시인은 1956년 무주 출생으로 1991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했다.

무주작가회의, 전북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한국장애인문인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문집 ‘아직은 사랑은 가장 눈부신 것’, 시집 ‘꿀벌에 대한 명상’, ‘아주 오래된 내 마음속의 깨벌레’, ‘포내리 겨울’, ‘지상의 빈 의자’, ‘지상을 날아가는 소리’, ‘바람의 뿌리’, ‘가풀막’, 산문집 ‘겨울엽서’, 공저 시집 ‘겨울새가 젖은 날개로 날아와 앉았다’, ‘그대가 사는 마을에 가고 싶어 편지를 쓴다’ 등 다수가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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