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문 전주남부교회 목사
/강태문 전주남부교회 목사

지난해(2021년) 초 개신교 여론조사기관 목회데이터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21%로 나타났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국민일보와 사귐과 섬김 부설 코디연구소가 여론조사기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올해 초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독교에 대한 대 국민 이미지 조사’ 결과 한국교회 신뢰도는 18.1%로 나타났다.

필자 역시 한국교회의 목회자로서 조사된 데이터의 결과치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런 결과를 부끄럽게 받아들이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아 모든 기독교인이 칭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신뢰도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삶이 필요하다(50.2%)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언행 자제(34.0%)가 그 뒤를 이었다.

재정 투명성 제고(28.9%), 교인들의 윤리적인 삶(26.2%)에 대한 응답률은 비슷했다.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가 낮은 원인은 삶으로 증명되지 않는 신앙과 배타적인 이미지로 유추할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가끔 기독교 지도자의 그릇된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과연 성도들이 목회자를 얼마나 신뢰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강단의 메시지는 힘을 잃게 되고 교회는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조사된 결과에 신뢰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삶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픈 내용이다.

그만큼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성직자의 일탈한 사건으로 문제가 된 일이 있다.

천주교와 성공회의 신부 2명이 SNS를 통해 대통령 전용기 추락을 기원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많은 논란을 만들었다.

대한성공회 원주 나눔의집 대표 김규돈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의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순방을 비판하며 “전용기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천주교 박주환 신부는 페이스북에 하늘을 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윤 대통령 부부가 떨어지는 모습을 합성한 이미지에 ‘기도2’라고 제목을 붙여 공유했다.

이 이미지에는 “기체 결함으로 인한 단순 사고였을 뿐 누구 탓도 아닙니다” “비나이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린아이가 기도하는 듯한 모습도 합성돼 있었다.

박 신부는 이 글에 항의 댓글이 달리자 ‘반사~’(댓글에 거부한다는 뜻)라고 답글을 달기도 했다.

필자와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자 그 가르침을 전하는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많은 문의를 받은 바 있지만 대답할 수 있는 답이 궁색하다.

필자 자신 스스로가 민망하고 궁색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가당착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 문제에 여러 매체에서 잘못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평소 정치인에 대한 호감을 가지지 않은 필자인데 정치인의 반박에 할 말이 없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 대책회의를 통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성직자인 신부들이 그랬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 “더욱이 우리를 놀라게 한 건 시민들의 비판에 그들의 대응 태도이다.

”라고 공세를 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대한성공회는 김 신부의 사제직을 박탈했고 천주교 대전교구는 미사나 고해성사 같은 신부 업무를 볼 수 없게 징계를 내렸다.

성직자라 해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정당한 일이다.

필자 역시 칼럼을 통해 현 정부와 정치인들의 잘잘못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성경에도 세례요한은 이스라엘의 왕인 헤롯의 잘못을 면전에서 지적하고 책망했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마 14:3-5) 구약 기록의 많은 부분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로서 왕과 백성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돌이킬 것을 강하게 전했던 기록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이지 그들 스스로 누군가를 저주하지는 않았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녔다.

다윗은 친구이자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고백하기를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삼상 20:3)고 하였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쫓아다닐 때 그를 죽일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사울에게 변론만 할 뿐 죽이지 않은 것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하셨다.

필자도 ‘과연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해 볼 때가 있지만 확실하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필자 역시 연약한 존재여서 장담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을 함부로 저주하거나 악담을 할 수는 없다.

더욱이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자인 대통령이 죽음에 이르면 국가에 큰 혼란이 있게 되는데 하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전해야 하는 소명을 받은 사람으로 전용기 추락을 기원하는 것과 같은 일을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몇 사람의 신앙인의 일탈이 기독교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여겨져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성경에 모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빛’이라 했다.

빛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믿음과 함께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야 할 소명을 가진 것이다.

앞서 기록하였듯이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삶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소리를 마음에 두고 본연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신앙인의 도리라 생각한다.

/강태문 전주남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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