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혼불' 배경지 남원 사매면
노적봉 산기슭에 자리 18년 맞아
넓은 잔디마당-전시관 풍광 압도
서도역-거멍굴 등 소설배경 현존
등장인물 가계도-디오라마
효원 장례식-강모강실 소꿉놀이
소설 줄거리 한눈에 볼 수 있어
집필실 24년전 모습 그대로 간직
최명희작가 일제시대 양반가
종부3대 주변이야기 17년간 집필
한국인 역사-정신 생생하게 표현
'혼불문학상' 국내 독보적 문학상
성장 12회 맞아··· 문학발전 이바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혼불문학관에 들어서면 스피커를 통해 작가가 생전에 인터뷰하는 낭낭한 육성이 들려온다.

전국의 문학관 가운데 손꼽히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혼불문학관은 소설‘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매면 노적봉 산기슭에 지난 2004년에 자리 잡아 어느새 올해로 18년을 맞고 있다.

청호지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소설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문학관의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넓은 잔디 마당에 넉넉한 여백을 두고 전시관과 풍광을 압도하는 누마루가 딸린 교육관이 한옥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탁 트인 마당 한 켠에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소나무 한그루가 허리를 굽혀 관람객들을 맞는다.

혼불문학관 주변에는 노봉마을과 종가· 청호저수지· 노적봉, 노적봉· 서도역· 거멍굴 등 소설의 배경지로 등장하는 장소들이 현존하며 소설 속에 인물들 가운데 이곳 마을에 살았던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청암 부인이 실농한 셈 치고 ‘천추락만세향’을 누릴만한 곳으로 2년에 걸쳐 만든 청호저수지는 솟대들과 함께 그저 말없이 민중들의 아픈 삶의 이야기를 담은 듯 찰랑거리고 있다.

전시된 등장인물 가계도와 디오라마로 표현한 전시내용을 보면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도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이해할 수가 있다.

소설 속 강모와 효원의 혼례식, 강모와 강실의 소꿉놀이, 효원의 흡월정, 액막이연 날리기, 청암부인 장례식 등이 인물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제작 전시돼 있다.

생전 작가를 만날 듯 재현된 집필실은 소설 혼불과 함께 작가가 세상을 떠난 24년 전으로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최명희 작가는 19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등단했고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 제1부가 당선되어 문단의 주목을 받은 이후 1988∼1995년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10 권으로 묶어 완간하며 1998년 51세 되던 해 안타깝게도 만년필을 놓았다.

소설‘혼불’은 최명희 작가가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17년간 집필한 대하소설이다.

일제 강점기 남원의 몰락해가는 매안이씨 양반가를 지키려는 종부 3대를 중심으로 주변 이야기가 전개된다.

종가를 지키는 종부 3대와 매안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하층민 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역경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섬세하게 표현한 거대한 작품이며 기록서이다.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 양반사회의 기품과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소설을 소리 내어 읽으면 판소리를 듣는 듯 섬세하게 묘사된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가 가락을 느끼게 한다.

대하소설 ‘혼불’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명희 작가의 문학 혼을 기리고 한국문학을 이끌어 갈 문학인을 발굴하기 위해 전라북도, 남원시, 전주시, 전주MBC가 지난 2011년에 공동 제정한 혼불문학상은 매년 3~4백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국내 독보적 문학상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혼불문학상은 가을이면 남원 혼불문학관과 전주 최명희문학관에서 격년제로 진행되며, 올해는 ‘검푸른 고래 요나’ 작가 김명주씨가 수상에 영광을 안았다.

혼불문학상은 제1회 최문희 작가의 ‘난설헌’, 제2회당 박정윤 작가의 ‘프린세스 바리’, 제3회 김대현 작가의 ‘홍도’, 제4회 박혜영 작가의 ‘비밀 정원’, 제5회 이광재 작가의 ‘나라없는 나라’, 제6회 박주영 작가의‘고요한 밤의 눈’, 제7회 권정현 작가의 ‘칼과 혀’, 제8회 전혜정 작가의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제9회 서철원 작가의 ‘최후의 만찬’, 제11회 허태연 작가의 ‘플라멩코 추는 남자’가 수상을 안으며 최명희 작가의 정신과 한국문학 발전에 함께 했다.

한편 내년에 성년이 되는 혼불문학관은 최명희의 혼불문학정신을 잇는 공간을 넘어 지난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이후 남원시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떠오르는 1930년대 서도역과 함께 연계성 강화와 ‘가장 아름다운 문학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전체 새롭게 단장을 앞두고 있다.

혼불문학관 운영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며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당일은 휴관이다.

/남원=장두선기자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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