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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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無湖南(약무호남) 是無國家(시무국가)”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는 뜻으로 1593년 7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 일부분이다.

이 편지는 같은 해 6월 진주성이 함락되고 왜군의 전라도 진격이 초읽기에 들어선 순간에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글귀의 바로 앞에 나오는 “홀로 가만히 생각하니 호남은 국가의 보루”라는 의미의 “竊想湖南國家之保障(절상호남국가지보장)”과 같이 읽으면 이순신 장군이 남몰래 얼마나 깊은 고민에 잠겼는가를 알 수 있다.

이 깊은 생각 끝에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호남을 사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즉 이 글은 호남의 전략적·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若無湖南 是無國家”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가를 떠나 이 글귀는 오늘날 호남과 호남인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말로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

호남지역의 많은 벽화나 돌비에 새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호남향우회 행사에서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필자가 속해 있는 재경마포호남연합회에서도 매 회의 때마다 회의장 앞에 이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내건다.

이에 대해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오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이 말의 상징성과 내포하고 있는 깊은 의미를 고려한다면 호남인의 자긍심을 말할 때 인용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물론 다른 지역이 호남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없고, 호남인만한 자부심이 없을 리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호남과 호남인이 이순신 장군의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이유는 이 말이 호남과 호남인의 정서 내지는 정신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야 말로 “若無湖南 是無國家”가 호남의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

시대적 역할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시대적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가면 된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어서도 호남인이 정말 대단해서도 아니다.

호남인의 내면에는 호남지역과 호남인이 대한민국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어느 곳에 가든 호남인의 자존감과 존재감이 남다르게 두드러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호남인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단순한 구호 내지는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호남인 스스로가 이 시대와 국가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는 지역적 우월성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생각의 크기만큼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어느 한 개인의 능력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정치인, 지방자치단체, 언론, 사회단체 등을 비롯해 호남을 떠나 각지에서 향우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나서야 한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계묘년이 현대적 의미의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초석을 놓는 원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이뤄내야 할 호남의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전북과 전남, 광주가 따로 일 수 없지만 전북이 먼저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계묘년 첫날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 글귀를 떠올리는 이유다.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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