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의 아침

김영곤 
 

네온 불빛 사이로 저무는 옛 추억들은

먼 길 가는 밤 앞에서 은유의 옷을 입은 채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검은 고양이처럼 지나간다

 

아파트 전등들이 하나둘씩 보조개를 짓듯 켜지는데

출근을 서둘러야 할 엄마는

다시 아침을 위하여 거실 나비 되어 날았고

어린아이 칭얼대는 소리 유리문 물빛그림자로 비친다

 

가지 끝에서 쉬어가는 12월 늦은 꿈이 목놓아 운다

 

승차장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중년이 뿜어내는 혈기가

지정된 시간표에 젖을 물린다

 

세월이 또 한 번 지나가는 낙엽들 엉거주춤 못다 한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봄은 아직 겨울 혀를 깨물고 멀겋게 개화의 완장을 낀 채

꽃과 나무들 새벽이슬의 뼈를 머금고

무표정의 햇빛 망막에서는 트림 냄새가 난다

 

지난해의 가랑잎들을 달고 나무는 식은 거미줄 사이로

찬바람을 빨아들이며,

한겨울에도 푸르른 풀잎 줄기마다 서릿발이 성큼성큼

뒤숭숭하게 핀다

 

안경을 벗은 나는 이른 풍광들이 서틀고 안 보이겠지만

흩어진 목덜미 뒤로 스치며 지나가는 것들

절벽을 오른 내 꿈이 그렁그렁 뜬눈으로 영글어간다

 

느티나무는 적막을 더듬다가 추위에 달빛 속으로 한 조각

심장만 남겨 두근거리는데

아직 1월의 기미를 눈치채지 못한 인적 없는 아침이지만,

겨울바람이 뒷걸음질로 뜰 안 낙엽 더미를 허적거리고 있다

 

*김영곤 시집<그대, 사랑의 계좌는 있나요>(도서출판 북매니저.2022)

-사람들은 신년 일월 아침에는 다짐하는 게 많고 바라는 것이 많다. 기대하고 다짐하고 바라는 것은 모두 미래에 두고 하는 일이다. 그래서 미래가 궁금한 사람들은 정초부터 점을 치거나 사주를 본다. 또 누군가에게 기도를 한다. 이것들도 미래에 두고 하는 행위다. 

“아직 1월의 기미를 눈치채지 못한 인적 없는 아침이지만,” 시인은 일월 아침에 1월의 기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했다고 한다. ‘기미’는 주역에서 매우 중요한 괘를 의미한다. 본격적인 위기가 닥쳐올 것을 암시하는 조짐을 사전에 인식하고 더 깊은 위기로 번져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을 기미라고 한다. 꼭 위기만이 아니라 미래에 닥쳐올 변화를 말함이다. 일월의 기미는 한 해의 시작이므로 매우 중요한 변화일 수 있다. 모두가 예측 가능한 미래가 있다면 삶이 참 쉬울 것이다. 어렵고 다양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를 한 편 읽는 이유라면 좋겠다.

-김현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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