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마공법 명품 도자기 생산
茶선생 자격증 취득 다도교육도
혼 담긴 도자기로 한류문화 선도
'분청도자기' 일류대열 합류 자신
'다완도자기' 인생 성공기 열어
후진들 돈 버는 도예가 양성
사회적기업 설립 꿈 키워나가

김상곤 도예가(60)는 무주 전통공예방에서 전통 도자기를 빚으면서 인생 이모작을 설계하고 있다.

전통공예공방은 지난 2012년 무주를 대한민국 전통공예 장인들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설립됐다.

이곳에서 활동 중인 김상곤 도예가는 경기도 이천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무주에 정착했다.

군은 공방의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 등을 지원하고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도예가의 작품들은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자기를 주로 만들어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넘친다.

무주에서 ‘뼈를 묻기 위해 불가마를 만들었다’는 김상곤 도예가로부터 그의 무주이야기와 작품세계, 그리고 각오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 명품 도자기를 건지기 위해 전통가마를 고수한다

김상곤 도예가는 가스 가마 보다 불을 떼 도자기를 굽는 전통 가마를 고수한다.

그는 생활에 쓸 수 있는 실용성을 가미한 도자기는 오래 구울수록 강도가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확률로 예를 들었다.

물론 가스 가마를 이용한 도자기의 경우 많은 도자기를 구울 수 있다.

그는 도자기 생산량을 80%로 봤다.

불을 뗀 도자기의 완성율은 그만큼 적다.

불의 색깔로 온도를 감지하며 그릇에 색을 입히는 전통 가마 공법으로 명품 도자기를 생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변화를 꾀한다. 불이 자연이라면 변화는 번듯하고 보기좋은 도자기라 보면 된다고 했다.

인위적인 도자기가 아니라 자연과 혼이 베인 명품 도자기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편리한 가스 가마를 쓰지 않는다.

도자기를 빠르게 생산해 낼 수 있는 가스 가마는 그의 집요한 전통 가마 철학에 묻혀 버린지도 모른다.

묵묵히 전통 가마를 짓고, 그것의 온도를 몸으로 살펴 도기를 구워낸다.

기압 등에 따라 도자기를 굽는 환경이 달라진다.

그간의 경험을 살려 불과 그릇과 가마 앞에서 혼연일체가 될 때 희열을 느낀다.

결국 불가마를 활용한 전통 가마에 대한 그의 노하우는 책으로 엮어 나왔다.

  

# 차(茶) 선생님, 배출하는데 집념하는 전통 가마 김상곤 도예가

기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다양한 차(茶)를 마실 수 있었다.

그가 수시로 따라주는 차의 맛은 은은하면서도 맛이 있었다.

차를 조금씩 마시면서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차 맛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사실 그는 유명세를 타고 있는 도예가이면서도 차에 대한 조예와 능력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녹차와 홍차, 보이차 등을 조리할 수 있는 차선생 자격증도 대학원 과정에서 취득한 그다.

그는 다도를 5년 정도 배워야만 ‘다도대학원’도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소개했다.

차와 도자기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도 상당하다.

현재 그가 차린 공예방은 다도 교육공간으로 손색이 없다고 했다. 

 

# 우리 혼 담긴 전통도자기를 ‘한류문화’로 만들겠다

우리나라는 K-P으로 사실 세계를 평정했다.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인지도를 높여 주는데 ‘일등공신’이 된 셈이다.

그의 원대한 꿈은 우리 혼이 담긴 도자기로 한류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그가 착안한 ‘분청도자기’가 일류대열에 꼭 끼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곁들였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는 분청도자기는 황토흙에다 하얗게 분을 입힌 도자기다.

분청의 깨끗함과 자연스러운 흙의 절감이 우리만족 정서와도 닮았단다.

한국정서를 담은 도자기(접시)에 세계의 음식을 담는 그날이 돌아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도자기부터 묻어났다.

고려시대 고려 청자, 조선시대 백자 청자, 현대에 와서는 바로 분청도자기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청자로 세계인들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그의 열정을 쏟아내겠다는 각오다.

 

# 인생역전, 김 도예가, 다완도자기로 승부걸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이토록 인생 질곡이 심했을까할 정도로 그의 인생은 복잡 다난했다.

그가 오늘의 영광을 얻기 까지는 그만큼 실패를 거듭한 인생의 파노라마였다.

도자기의 고장 경기도 이천에서 한때는 직원 10명 정도를 거느릴 정도로 꽤 수입도 많았던 그다.

94년 당시 매출 순이익이 1천만원 정도면 상당히 많은 수입이다. 하지만 어느날 화재로 공방이 전소되면서 엄청난 부채를 떠 안으면서 인생의 질곡으로 빠져들었다.

그후에도 불상과 약탕기도자기와 일반도자기를 생산하면서 도자기 유통회사로부터 수억원의 주문이 들어왔지만 주문한 업체가 부도나면서 그의 푸른꿈도 사라졌다.

이후에 절망속에 허덕이던 김 도예가는 도예 후배의 제안으로 다완도자기를 제작하면서 인생 역전드라마가 사작됐다.

이 도자기는 찻잔이다. 일반 여느 찻잔에 불과할 정도로 크기는 작지만 수백만원에서부터 수천만원까지 이르는 고가품이다.

그의 성공을 열게 된 다완도자기 찻잔이 진열대에 수북히 진열돼 있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탄 김 도예가는 서울 강남의 유명 식당과 호텔, 그리고 중국 등 해외에서도 주문량이 폭증하면서 예전 부채도 말끔하게 처리했다고 들려줬다.

불행이 종료되고 행복시작이 된 셈이다.

 

# 김 도예가 ‘도자기 사회적 기업 설립할 것’, 후진들 돈버는 도예가 양성 꿈

자신을 지금까지 지켜주고 지탱하게 해 것은 바로 도자기였다고 말했다.

가끔씩 그의 수련생들이 도자기 완성품을 전시할때가 가장 보람있고 든든하다.

이제 불가마와 함께 살아온 삶의 여정은 후진들이 취미와 작품 활동과 함께 ‘돈버는 도예가’로 양성 하는 것도 그의 꿈이다.

자신을 키워 준 무주군을 위해서는 무주군민을 위한 도자기 ‘사회적기업’ 설립이 꿈이라 했다.

도자기 제작에 대한 기술을 배워 판매망을 구축할 경우 돈버는 도예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술분야에 다재다능했다.

당초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고교때 우연히 신상호 교수(단국대)를 만나면서 도자기에 흠취했다.

신 교수의 도자기 조형작품에 매료한 그는 도예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단국대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는 도자기를 잘 만드는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 설립에 대한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무주=장영진기자 jyj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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