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조 전주문인협회 회장
/김현조 전주문인협회 회장

시(詩)를 파자하면 말씀언(言) 옆에 절사(寺)자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절에서 쓰는 말이다. 과거나 현재나 불교를 상징하는 절에서는 수행자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간으로 말은 적게하며 간단명료한 말만 했었던가 보다. 특히 선가에서는 불립문자라고 할 만큼 말을 줄여 썼고 불필요하게 인식했다. 반대로 속세라고 불리는 일반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는 그 불필요함이 넘쳐나면서 온갖 미사어구가 과도하게 사용되며 해괴한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시는 간단해야 하고 명료해야 한다. 길게 쓴다고 난해하게 쓴다고 좋은 시가 아니라는 것을 한자의 태생부터 일깨워주고 있다. 절사(寺)자를 한 번 더 파자하면 흙(土) 아래 마디(寸)다. 손가락 마디가 흙 아래 심어있는 형상이다. 절에서는 명상이나 수행에 전념하고 실천을 우선하기 때문에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묵언수행을 하기도 한다. 수행자에 따라서 다르지만, 수년 동안 묵언을 하면서 말과 거리를 두는 승려들도 있다. 

즉 시는 한마디의 말로 된 문장이다. 그러나 그 한 마디가 흙처럼 굳건하고 바탕이 되어주고 모든 생명의 발을 딛게 하고 있다. 시는 짧은 언어지만 단단하고 굳건한 언어이며 간단명료하지만 생명이 되고 기본이 되는 문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 속에 깨달음이 있고 울림이 있고 느낌이 있고 메아리가 있고 심지어는 노래까지 담아져 있다.

불교에서는 『법구경』이라는 경전이 시로 되어 있다. 유교에서는 사서삼경 중 『시경』이 있다. 『성경』도 시편이 별도로 엮여 있다. 모두 시를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고 있다. 

현대사에서 시는 일제와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유격전을 벌여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날카로운 검열이란 칼날을 피해가며 문자를 요리조리 조합해가면서 치열하게 시를 통해 항거했던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시인들을 경배해야 한다. 또 군부독재 시대에도 도시마다 시가전을 벌이듯 유격전을 벌여왔던 시인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유격전이 절정을 이룬 것은 1980년대이다. 시동인지들이 만들어졌고 동인으로 뭉친 시인들이 초라한 행색으로 시대를 대변하고 독재에 항거했다. 거대한 조직과 힘을 가졌던 언론이나 검찰도 하지 못한 일을 시인은 각개전투와 유격전으로 돌파했다. 시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시인의 가치는 시를 제대로 세상에 배치했을 때 빛난다. 세상에 출현한 시는 지표가 되고 방향타가 되어 사회를 올바르게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시(詩)였다. 

지금은 서정의 시대인가 묻고 싶다. 시의 본질은 사람에게 있고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는 운율을 통한 아름다움의 발견이고 목표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계몽적이고 긍정적이고 착함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대일 수 있다. 필자는 일제강점기와 독재 시대에 활동했던 선배 시인이 했던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시의 역할 중에 시대적 소명감을 갖자고 주장한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그 감정이 아름답게 꽃피우려면 민주주의가 먼저 흙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시가 민주주의를 굳건히 바쳐야 한다. 꽃을 가꾸듯이 민주주의는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 정치인들의 행태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위협받고 있음을 시인들에게 현실을 지적한다. 

시는 끝나지 않았고 진행 중이니 지금 단정적으로 결론 내릴 일은 아니다. 매년 봄은 돌아오고 꽃은 다시 피며 나뭇잎은 푸르러진다. 반복되고 연속되는 시간에 시가 어느 지점이라도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 매듭이 민주주의였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의 수사에 제동하는 문장이길 기대한다. 권력이라는 단어를 지우개로 지우는 동작이었으면 더 좋겠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익혔던 고전과 시들을 기억하는가. 그 문장과 시를 지은 사람들은 정치인이었고 선비였고 문인이었다. 그들은 시험을 치르고 뽑힌 나라의 인재들이었고 공무원이었다. 음서제가 있었기 때문에 음서제로 발탁된 사람들도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무자비하게 아무렇게나 내질러버리는 현재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말과는 격조가 달랐다. 고려 문장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이제현은 출장을 가서도 시에 대해서 궁리했다고 한다. 시로 백성의 살림살이 형편을 남기는데 신중했다. 시가 직접적인 지식이 되고 정보가 된다고 할 수 없지만 시가 하는 일은 매우 많다. 업무가 많고 각자 전문성이 다르겠지만 공무원들이 시를 읽고 이해하고 시를 지었으면 좋겠다. 시를 잘 지으라고 주문하는 게 아니라 시가 문학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각자 하는 일에 역사와 사명감을 담아보라는 주문이다. 우리 사회를 위해 문화가 꽃핀 선진사회를 위해 소명을 담은 시가 역할을 하는 시대이길 바라는 것이다. 전북시인협회장을 마치면서 소회를 적었다.

/김현조 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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