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도내 산재 사망사고 18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 7건
법시행 1년이후 처벌사례 '0건'

노동자 사망사고-사업주 연관성
사업장 안전관리체계-판례없어
혐의입증 어려워 노동자 생명위협
감축효과는 없고 현장혼란 가중만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추진
경영계 "예방우선" 법보완 개정을
노동계 "강한처벌" 엄정한 법집행

건설업-제조업 등 산업특성 법 적용
총괄자 아닌 대표이사 처벌 문제지적
무조건적 처벌 사고예방 해결책 안돼

노사, 자체규법 마련 위험요인 발굴
사고발생기 자기규열 예방체계 확립
산업군별 매뉴얼 교육진행 의견 모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지만 산업현장에서는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의 안착은 아직도 요원하고 설익은 법안이라는 인식과 함께 노사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는 줄었지만, 아직 유의미한 수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제시하는 처벌보다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던 정부는 처벌 중심에서 재해 예방에 초점을 두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부터 개정하기로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효성이 없는데다 기존 산안법으로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시행 1년을 넘긴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지하기도 폐기하기도 어려운 ‘계륵’과 같은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의 경과와 경영계, 노동계의 엇갈린 목소리, 해결 과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의 변화는  

# 지난해 3월 8일 김제 새만금 수변도시 건설 현장에서 굴착기가 넘어져 60대 근로자가 숨졌다.

이 건설 현장에서는 지난 2021년 10월에도 40대 노동자가 중장비를 옮기는 과정에서 화물차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같은 해 3월 31일에는 완주군에 있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있었다.

현대차 소속 근로자는 트럭 운전석을 올린 후 작업을 하던 중 운전석이 갑자기 내려오는 바람에 캡과 프레임 사이에 끼어 변을 당했다.

그는 곧바로 출동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 지난해 5월 4일에는 세아베스틸 군산공장에서도 철근에 부딪힌 50대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노동자는 16톤 지게차에 실린 철근에 부딪혀 쓰러진 뒤 앞 바퀴에 깔려 숨졌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모두 18건이다.

이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망사고는 7건이다.

하지만 법 시행 1년이 경과하는 동안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상태다.

핵심은 사망 사고와 사업주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것인데 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사업장의 안전 관리체계를 살펴봐야 하고 판례도 없어 혐의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북의 상황이 그렇고 전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법 적용 대상 사업장의 중대재해 사망자는 되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 27일부터 12월 31일까지 발생한 중대재해 229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단 11건으로 비율은 4.8%에 그쳤다.

이마저도 처벌된 사례는 없었다.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는 256명의 노동자가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법 시행 전인 2021년에는 248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대재해를 막겠다며 법을 시행한 뒤 오히려 사망자가 소폭 늘어난 것이다.

고용부는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가 크게 줄지 않고 있는데 대해 기업들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처벌을 피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대로 가다보면 시행 1년 만에 ‘계륵’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처벌 중심의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해봐도 사망자가 크게 줄지 않고 있는 등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일단 산안법부터 손 보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 산업법과 비교하면 예방보다 처벌에, 현장 책임자 보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 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산업재해 감축 효과가 없고, 모호한 처벌 기준으로 현장 혼란만을 가중시켰다는 비난도 거세게 일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말 고용부는 처벌 위주에서 자기규율 예방 체계 중심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위험성 평가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줄다리기의 끝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이 지났지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목소리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신속한 법 적용을 촉구하는 노동계와 관련 법 개선을 요구하는 경영계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뚜렷한 효과 없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벌써부터 실효성을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 동안 경영계는 ‘산재사망 예방’이라는 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모호한 조항과 과도한 처벌을 들어 산업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사업주의 책임과 의무만 강조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관련 수사가 장기화한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이 같은 주장은 법률의 모호성과 불명확성이 주된 배경이 됐다.

‘사업 대표’와 ‘이에 준하는 자’중 경영 책임자로서 안전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의무를 이행한 이를 특정하기 어려워 수사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 해인 지난해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가 오히려 8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영계는 법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영계는 법의 보완과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 방향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와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등 16개 관련 협회가 연합한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포괄적인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령을 제정하더라도 적용과정에서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건설업계 차원의 시행령안 마련을 건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건설협회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관리의무라든지 재해 등의 모호한 표현은 건설업계를 비롯한 기업들의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처벌 수준도 과도해 현실적인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우선 적용 후 사고가 많은 업체에 대해서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 방안 등에 공감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정부가 하루 빨리 보완 입법을 추진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 시행 1년을 맞은 시점에서 실효성을 따지기보다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저조한 기소 실적에 대해 제대로 된 법 시행이나 적용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 시행 1년을 맞은 지금은 실효성을 따지는 것 보다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법 실효성 높이려면 노ㆍ사 모두 노력해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업현장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는 없고 집행 과정에서 혼선만 초래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단체는 낮은 실효성을 지적하며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하고 있다.

사고가 많은 건설 현장에서 재해 예방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인 개선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형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건설현장에서는 모호한 부분을 개선하고 현실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사 모두의 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법의 산업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산업군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보다는 건설업이나 제조업 등 산업의 특성에 따라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건수를 따지기 보다는 중대재해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법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표이사를 처벌하는 법령상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안전담당자에게 안전 관련 전권을 위임하고 있다.

이런 경우 대표이사가 실제로 총괄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처벌을 받게 된다면 기업들이 법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는 주장이다.

또 법이 지나치게 수사와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면책을 위해 대응하려는 현실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처벌을 강화하기 보다는 기업들로부터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인데,무조건적인 처벌 강화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군별 매뉴얼을 만들어 필요한 교육을 하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법이 다듬어져야 한다는 의견으로 귀결되고 있다.

지난해 고용부는 처벌 위주에서 ‘자기규율 예방 체계’ 중심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오는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해 나가려는 계획이다.

고용부는 올해부터 위험성 평가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산안법 개정을 추진한다.

위험성 평가 과정에 근로자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련 고시도 개정할 방침이다.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해 평상시에는 유해ㆍ위험요인을 스스로 발굴ㆍ제거하고, 사고 발생 시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로드맵에서 발표한 것처럼 현장 중심으로 매일 작업 전에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위험요인에 대응하기 위한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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