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 해군 입대 천황폐하 위해 목숨 다바져

1944년 10월의 '레이테 해전'에서 일본이 자랑하는 두개의 쌍둥이 전함 중 '무사시' 함이 출동합니다. 미군의 포탄을 맞고 침몰하는 와중에도 부사관 하나가 <히로히토> 부부의 어진영(사진)을 짊어지고 구하느라고 죽게 되는 현장을 목격하며 유일한 생존자가 됩니다. 바로 1945년 8월 15일에 수리를 끝내고 출진하려는 새로운 전함에서 항복 선언을 듣습니다. 그리고 2주 후 전역합니다.

저자는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관계로 초등학교만 졸업합니다. 입대를 독려하는 연설에 감명받아 불과 16세의 나이에 해군에 입대합니다. 1944년 10월의 기적적인 생존에도 나라를 위해, 동포를 위해, 누구보다도 천황 폐하를 위해 죽는 것, 목숨을 바쳐 皇恩에 보답하는 것이 더없는 명예라 믿고 임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패전 소식이 들리자 살았다는 안도감은 전혀 없이 '죽을 자리를 놓쳤다.'는 원통함을 먼저 느낍니다.

9월 13일 신문에서, 9월 11일 자살을 시도했으나 권총을 제도로 못 쏴서 목숨을 건진 <도조 히데키>의 소식을 봅니다. 명색이 육군 대장이, 생계 수단인 권총 하나 제대로 못 쏴서 포승줄에 묶인 코미디에 분개합니다.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음으로써 죄스러운 汚名이 남지 않게 할지어다.' 라는 훈령을 공표한 당사자의 실수에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 합니다.

9월 27일에 <히로히토>가 <맥아더>를 방문합니다. 천황을 만나는 방법은 단 하나 '궁중 알현'밖에 없는데 알아서 찾아간 것이죠. 부끄러움도 모르고, 졌으니 더욱 의연해져야 함에도 굴욕의 방문을 한 것에 당연히 분개합니다. 이런 천황을 원수랍시고 따르던 일본인 중 한 명이었다는 것에 부끄러워 합니다. 신성함과 권위를 스스로 내팽개치고 적 앞에, 개처럼,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린 천황을 향한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찍은, 마치 <히로히토>가 목숨을 구걸하러 온 기분이 느껴지는, 두 사람의 역사적 사진에 의해 천황에 대해 품어왔던 신앙과 경애하는 마음이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10월 3일에 나온 신문에서 천황과 [뉴욕타임스] 기자와의 대담을 보게 됩니다.

'진주만 공격을 하기 위해 <도조 히데키>가 발표한 선전 조서에 옥새가 찍혀 있는 것이 천황의 뜻이었냐?'는 질문에 '<도조>처럼 쓰는 것이 의도가 아니었다.'며 발뺌하는 것을 읽습니다.

본인에게 뜻이 없는데 서명을 할 리가 없고, 당시의 천황의 권력이 얼마나 컸는데 익히 아는 저자는, 원수답게 "선전 포고는 내가 책임지고 명령한 것이므로 도조 혼자 뒤집어쓸 일이 아니다."라는 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죠. 모두 넌지시, 으뭉스럽게 <도조>에게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자신을 지키려는 잔꾀에 환멸을 느낍니다.

이후는 이 마음으로 2차 대전 중 군에서 지급 받은 군물품 비용을 8개월 후인 1946년 4월 천황에게 돌려주며 정산하며 마무리합니다. 이는 일본 특유의, "'온(恩)'을 입었으니 갚아야 한다."는 정서에 대해, 입지 않았다는 부정 또는 거부를 드러낸 것입니다. 원래 독서를 권유하기 위해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꼭 아셔야해서 마지막 대목을 적었습니다. 즉 패전 후 전역하고 단 50여 일동안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우뚝서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7세기를 확립한 시기로 추정하는, <쇼토쿠 태자>가 정한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본틀이 21세기까지도 존속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이 일본인의 생사관인데, 미학적 죽음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희생적 죽음과 약간의 공통점이 있으나 반드시 이타적이지는 않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는 군입대 후 줄곧 천황에 대한, 그를 위한 순교에 가까운 희생을 꿈꿉니다. 죽음을 담백하고 덤덤하게 여겼던 점이 읽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대체 얼마나 세뇌 당했었기에...

문제는 그렇다고 그가 천황을 불멸불사의 神으로 여기는 바보도 아니고, 군 복무 중 단 한 번 실물을 보았을 때 느낀 왜소한 겉모습에 실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세계 종교 중에서 오직 이슬람만이 '聖戰을 벌이다 죽은 이에게 천국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천황을 위한 옥쇄가 순교는 아니고, 종교도 아니어서 내세관은 없기에 댓가는 없습니다. 일본은 다만 천황의 온(恩)을 입었기에 보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보은에 주저하면 안되기에 현실의 삶을 空 또는 虛하게 여기고 집착을 냉소하는 생사관을 보입니다. 이것이 출가한 승려의 용맹정진으로 얻어졌다면 건강한 空觀이 되겠으나 위정자들의 필요에 의해 국민들을 세뇌하였기에 니힐리즘이 되었습니다. 그 허무가 극복 되어지려면 정점이 무오류여야 하는데, <히로히토>는 제 목숨에 대한 집착이 다스리는 백성만도 못해 냉소하게된 것입니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까지 했는데 그는 책임을 부하에게 미루고 비굴한 목숨을 이어가려한다는 사실이, 미혹되었던 한 청년을 분개하게 하고 迷夢에서 깨어나게 합니다.

저자의 정신적 성장은 두꺼운 책 초반에 이미 완결되어지고 이후 굳건히 바로세우는 작업이 중후반을 채웁니다. 그의 정신적 변화만을 소개했습니다. 일본에서 단지 초등학교 졸업했을 뿐인 참전했던 한 청년이 굳세게 우뚝서기하는 힘든 도정에 응원하게 됩니다.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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