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2년차 팀 색깔 찾는 과정중
현대무용-작곡-가야금-소리
실험적 하모니로 팀 조화이뤄
정기연주회서 관객과 소통주력
리더 정승준 "현대무용은 내 삶"
가야금 박하영 "유파 대중화바라"
작곡 조영민 "새로움 색 입히고파"
소리 전민권 "전주 소리꾼 나아가"

한국음악 작곡가를 비롯해 가야금, 소리꾼 그리고 무용수가 한데 모여 활동하는 팀이 있다.

무작판이다.

현존하는 모든 예술을 무작위로 소환한 채 판소리에서 판을 깔 듯이 판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룹의 리더인 무용 정승준, 작곡 조영민, 가야금 박하영 그리고 소리의 전민권 등으로 구성됐다.

겉멋을 부리지 않고 팀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무작판은 작업을 하면서 싸우고 울고 웃으면서 자신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멤버 구성을 보면 어떤 음악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작곡과 가야금, 소리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여기에 무용이 더해진다.

그것도 현대무용이다.

어색할 것 같은 멤버 구성이지만 이들은 이 어색함이 무기다.

현대적 사운드를 가미한 음악이 완성되면 여기에 소리와 가야금 선율 그리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무용의 옷을 입힌다.

때론 옛 음악에서 소리를 가져오기도 하고, 현재 유행하는 사운드가 나오기도 한다.

또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예를 들었던 음악이 바로 무대로 직결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들이 젊다는 증거이며, 젊기 때문에 실험적 음악이나 어색함을 구현해도 모두 용서가 된다.

창단한 지 어느덧 2년이 됐다.

아직도 팀의 색깔을 찾는 과정을 밟고 있다.

무용과 국악 그리고 미디 사운드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한 쪽에 중심이 실리지 않고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갈 것인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국악과 무용과, 음악이 함께 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동작을 추구하고 새로운 연주를 시도하고 새로운 곡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아직은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같은 과정들을 통해 자신들이 찾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서다.

창단연주회는 지난해 5월 진행했고, 제1회 정기연주회는 최근 마련했다.

창단연주회 이후 새로움만 추구하다보니 오히려 매너리즘이 빨리 찾아왔다.

깊은 고민 끝에 무작정 새로움을 찾기에 앞서 멤버들간, 관객들과 소통을 먼저 하자고 생각했다.

리더 정승준은 “어찌보면 새로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반면 소통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번 정기연주회 제목을 교감이라 정한 것도 안무와 연주를 하면서 팀 소통이 이뤄지길 바라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정기연주회를 통해 멤버간 소통이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관객과의 소통은 아직도 요원하다.

정기연주회를 끝내고 관객들의 피드백을 수용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음 연주회에서는 관객과 소통을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일 예정이다.

남원 출생인 리더 정승준은 중학교 2학년 때 방송댄스가 좋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원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무릎 연골이 손상되면서 연극영화과로 전과를 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돼 고2때 현대무용을 본격 시작했다.

남들이 비해 엄청나게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그것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무용은 천재성보다는 연습한만큼 나온다는 말을 철저하게 믿었고, 실제 같은 결과를 얻었다.

전북대 무용과와 동대학원을 휴학 중이며, 제51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정승준은 “무용은 내 삶이다. 죽을 때까지 무용을 할 것이다”며 “하고 싶은 말을 몸짓으로 풀어낼 때, 그것을 이해하는 관객들을 만날 때마다 무용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야금 박하영 역시 남원 출생이다.

어린 시절 공부를 제법 잘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잘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방과후수업에서 가야금을 처음 만났다.

이민영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가야금을 한다니 부모의 반대가 거셌다.

하지만 지금 포기하면 훗날 포기할 것이란 생각에 부모를 설득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야금을 본격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비롯해 전북대 한국음악과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인이 배운 가야금은 유대봉제 백인영류라 불리는데 매우 희소성이 강한 유파로 알려져 있다.

워낙 희소성이 강해 이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도 전국에 몇 사람 되지 않을 정도다.

유파를 바꾸라는 주위의 조언도 많았다.

특히 대학을 가면 더욱 힘들 것이란 충고도 나왔다.

실제 전북대에 진학하니 이 유파를 가르칠 스승을 만날 수 없다.

홀로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학과 시험을 볼 때는 다른 유파를 잠시 배워 시험에 응했다.

박하영은 “우리 유파가 보다 대중화돼 많은 사람들이 익히고 널리 퍼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 기대에 나도 한 몫 하고 싶다”며 “음악으로 만들어진 인연을 쉽게 피하지 않을 예정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곡을 담당하고 있는 조영민은 전주 출생이다.

남들처럼 예술고가 아니라 일반계 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 잠시 밴드생활을 하면서 전자기타를 만지기는 했으나 대학 진학 전까지만 해도 국악기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작곡 공부 역시 국악에 대한 흥미가 많아서보다는 음악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니 국악을 접하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었다.

가야금이나 거문고 줄이 몇 개인지조차 몰랐다.

작곡자로서 알아야 할 악기별 음역대도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교수조차도 ‘어떤 음악을 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당황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이 점이 무기가 됐다.

정형화된 음악에서 벗어나 다소 다른 형식의 음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전통을 모르니 새로운 음이 나왔다.

이 점이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이라 소개한다.

조영민은 “모든 음악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새로움을 접하고 새로움을 생산하고 싶다”며 “다행스럽게 곡 위촉자들 대부분 만족을 한다.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난 음악이 이들에게는 새로움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전통도 좋지만 이 바탕 위에 새로움이란 색을 입히고 싶다”고 밝혔다.

소리를 담당하는 전민권은 전남 화순 출생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장구를 배우러 갔다가 소리에 입문했다.

박자감각이 없으니 악기 대신 소리를 해보자는 김영순 선생의 권유에 시작했다.

일곱 살 때 일이다.

남원예술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대학진학을 위해 남원 강민지 선생에게 강도근제 흥보가를 익히기 시작했다.

전북대에 입학한 지 엊그제 같은데 현재 졸업연주회 준비를 하고 있다.

남성다우면서 묵직한 소리가 장점인 반면 음역대가 낮아 여자 소리꾼과 공연할 때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극복해야 할 점이다.

낮은 음역대는 선천적이지만 꾸준한 연습과 발성공부로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두니 소리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된 듯 하다.

지금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반면 이제야 소리의 매력을 하나 하나 알아가고 있다.

소리공부 15년 만에 소리의 매력을 느낀 것이다.

지난 해에는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일반부에 출전해 장원을 거머쥐기도 했다.

전민권은 “이제야 소리를 알아가는 재미가 생겼다. 두문불출하고 연습실에서 연습에만 임하고 있다”며 “무작판 팀과 나 자신을 알리는 작업을 병행하겠다. 전주에 이런 소리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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