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전당 본부장 이영욱
/한국전통문화전당 본부장 이영욱

어린 시절 즐겨했던 놀이 중 생각나는 것은 딱지치기, 비석치기, 자치기, 공기놀이, 팔방, 오징어게임, 연날리기, 쥐불놀이, 고무줄놀이 등이다. 지금의 기억으로 난 공기놀이를 제법 잘 했던 것 같다. 겨울에는 외삼촌과 함께 방패연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청년의 나이에 처음으로 전주한옥마을 문화시설에서 근무하면서 방문객들에게 전통문화체험을 제공하고자 잊었던 방패연 만드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나름 학습하여 체험교육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건 방패연이 조선시대에서 전술신호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2022년 12월에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선 ‘전통놀이문화포럼’이 진행되었다. 기조 강연에서 “추상전략의 판놀이, 고누의 탁월한 유산성”이라는 주제로 길문화연구소 장장식 박사(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가 발표를 하였다. 또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종호 교수를 좌장으로 토론자들의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포럼을 통해 난 내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우리의 전통놀이 고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기조 강연에서 장장식 박사는 우연히 『서대문형무소, 옮기던 날의 기억, 그리고 그 역사』

(1988)라는 사진책에서 감방 마룻바닥에 새겨진 놀이판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의 캡션은 “감방의 마루바닥에 새겨진 고누판과 장기판, 감방은 침실 겸 거실이면서 오락실이기도 했다.”였다. 그리고 2007년 여름 모일간지 신문기자가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전돌 사진을 들고 찾아와 형태를 보니, 참고누이긴 한데 오늘날의 참고누판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되어 자문을 받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이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2008년 개성 만월대 출토 전돌의 참고누판에 대한 소개글을 ‘민속소식’에 기고하면서 고누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바둑과 장기와 달리 고누가 고누다운 것은 ‘한 판 두자’는 즉흥적인 현장성에 있고, 별도의 도구와 기물을 갖추지 않아도 놀이가 가능하다는 수월성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누는 땅바닥에서 말밭을 그리기만 하면 가능하다. 만약 종이가 있으면 그 위에 그려도 좋고, 혼날 용기가 있다면 마룻바닥도 좋다. 안방의 장롱 서랍을 꺼내어 엎어놓고 밑바닥에 말밭을 그리면 그것 또한 제격이다. 말(game pieces, tokens)이야 사금파리나 돌맹이, 나뭇가지나 풀잎도 좋다.”라고 했다.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었던 놀이였다는 것이다. 이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유적으로는 “황룡사지 출토 고누 장군형 항아리(국립경주박물관), 전북 진안군 도통리 청자가마터 출토 참고누 갑발(문화재청), 송림사지 출토 고누 전돌(국립경주박물관), 호박고누(부평역사박물관)”등이 있으며, 건축물의 마룻바닥과 바닥전돌에는 “전북 전주시 풍남문 2층 마루,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감옥 마루, 전남 영광군 매간당고택 서당 마루, 전남 담양군 소쇄원 광풍각 마루”등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자연암반 및 인공 석재에 새긴 고누판은 “전북 임실군 상가 윷판형 암각화 유적 자연바위, 강원도 원주시 거돈사지 바위,제주도 삼별유적지 수급바위, 경북포항시 오줌바위”등에 있으며, 회화작품에서는 유일하게 조선시대 ‘태평서시도(국립중앙박물관)’에 묘사된 우물고누가 있다. 또한 중국, 몽골, 터키 등 전세계적으로 분포 되었던, 누구나 즐겼던, 민간놀이였고 놀이판은 고대 문명의 산물로 존재해 왔다고 한다.

새롭게 알게 된 고누를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는 단순히 특정 지역 또는 우리만 즐겼던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함께 즐겼으며, 여러 형태로 변화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통문화는 항상 변화하고 적용되며 습득하고 전해지고 사라진다. 현대에서의 놀이는 “함께 즐기는 놀이보다는 혼자 하는 놀이, 상호 논의하고 협의하여 규칙을 만드는 놀이가 아닌 일방적인 놀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하는 놀이가 아닌 매체에 의존하여 실행되는 놀이”가 대다수이다. 시대의 변화에 어찌할 수는 없겠지만, 지속적인 연구와 실천으로 서로가 함께하는 우리놀이의 미래가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전통문화전당 본부장 이영욱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