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4

-복사꽃 물감 풀어서

조기호

 

물 위에 

임보다 먼저 핀 

복상나무의 연봉홍 꽃 이파리

떠 있습니다

 

새는 시방 하늘나라 천도복숭아 익고 있는 

천상계까지 훤히 보여

그 물감 풀어서

눈 가장자리 붉어집니다

 

연분홍 봄날과

꽃잎 

사이

 

아그배나무 하얀 꽃잎 머리에 쓰고

아지랑이 가물가물 걸어온

저 설렘의 거리距離를

모두

자근자근 날아 보고 싶습니다.

 

*조기호 시인 시선집 <하현달지듯 살며시 간 사람>(오감도. 2002) 중

- 시인이 남기는 유물은 실로 막대하다. 언어를 갈무리하여 사상을 남기기도 하고 언어를 조탁하여 민족 말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꼭 시인만의 일은 아니지만, 시어를 고장 말로 풀어내는 일은 과거에서 미래로 길을 내는 것과 같다. 조기호 시인은 전주말을 가장 잘 풀어내고 전주천 곳곳에 각인하듯 시집마다 특징지어 남기었다. 표준어를 서울에 사는 사람의 말을 중심에 두었다면 전라도 말은 전주에 중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구수하고 촌티 풍풍 풍기는 지역 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표준어로 통일해서 한가지 말을 쓰면 장점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말에 따라 지역의 특산물처럼 어원과 풍속이 있는데 그것이 사라지면 먼 훗날에는 땅속에서 유물을 찾아내듯 신기하고 귀한 물건이 되고 말겠다. 

조기호 시인의 오래된 시에서 젊음과 연심과 자유를 발견하였다. ‘복상나무(복숭아나무) 연분홍 꽃이파리’에서 봄 전부를 보았다. ‘새는 시방 하늘나라 천도복숭아 익고 있는/ 천상계까지 훤히 보여/그 물감 풀어서/눈 가장자리 붉어집니다’ ‘설렘의 거리를/ 자근자근 날아 보고 싶습니다’ 시인에게는 눈에 보이는 하늘도 부족한가 보다. 육안의 거리인 하늘 그 너머 천상계까지 보며 붉어진 눈 가장자리에서 ‘갈망과 갈애’를 읽었다. 그리고 자근자근 날고 싶어 하는 갈망에서 자유를 발견한다. 시 구조를 다중화하였고 행 갈래로 기교를 부려 멋지게 시인의 마음과 새가 가진 이미지와 복상나무의 상징성과 봄이 연상작용 하며 동일시한 봄 마중하는 절창이다. 

곧 도래할 봄을 그냥 앉아서 맞을 수 없다. 먼 데까지 나가서 마중하여도 좋은 시절이다. 마중 갈 때도 걸어서 가고 돌아올 때도 봄에게 노래를 들려주면서 함께 걷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세상이 다 환해지겠다. 부제가 ‘복사꽃 물감 풀어서’이니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다. 이십 년이 지난 후에도 시와 시인의 마음은 가까이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다.

-김현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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